[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최순실 편법대출 의혹이 불거지자 금융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최씨가 KEB하나은행에서 외화 대출을 받는 과정이 적절했는지 들여다 보겠다는 것인데,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순실과 미르재단, K스포츠 연루 정황이 보도된 시점은 지난 9월 중순이나, 조사는 한 달 반이 지난 이후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JTBC 태블릿PC 보도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고,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이 최순실 편법 대출 의혹을 제기하자 지난달 31일에야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조사가 늦어진 이유는 조사 주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책임 떠넘기기' 행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까지도 금융감독원 내 어느 부서가 조사에 착수할지 정해지지 않았다. 은행 관련 사안은 일반은행국이, 외화 송금 분야는 외환감독국이 담당하는 있는데, 두 부서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자기 부서 소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금융권 전반을 감독·관리하는 기관으로서 책임을 지고 진상을 밝히기 보다 어떻게든 최순실과 엮이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금융위원회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 금융위는 은행권 수사나 감독은 검찰과 금감원의 몫일 뿐이라며 최씨와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최씨 모녀의 불법 외화대출이나 환전 등의 자료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 관련 없다는 태도로 일관한 것이다. 금융소비자원이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FIU)를 고발하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금융위와 금융회사의 묵인 아래 최씨 모녀의 불법적인 자금 융통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FIU는 금융기관을 이용한 범죄자금의 자금 세탁행위와 외화의 불법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 2001년에 설립된 기관이다.
물론, 금융위 산하 FIU는 금융사로부터 의심거래 정보를 받아서 검찰 같은 법 집행 기관에 넘길 뿐 직접 수사를 하지 않는다. 금감원도 은행권 관리·감독을 맡고 있지만, 수사기관은 아니라는 점에서 최씨 의혹 조사에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수사권이 없다는 핑계로 손 놓고 방관하는 것은 직무유기 밖에 안된다. 금융위는 금융권 컨트롤타워이고, 금감원은 금융회사 전반을 관리하는 감독 기구다. 최씨 편법 대출 의혹의 책임을 부인할 수 없는 이유다. 이제라도 금융위·금감원은 검찰 수사를 기다리기보다 적극적으로 진상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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