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특검이 삼성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뇌물공여액으로 판단하면서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재단 출연 기업들을 피해자로 인정했던 검찰 수사결과가 특검에서 180도 반전됐다. 특검은 경제상황을 고려해 입건 범위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지만, 출연금에 대한 대가성 의혹이 짙은 SK와 롯데, CJ 등은 험로가 예상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실질심사가 18일 오전 열린다. 이규철 특검보는 앞서 17일 브리핑에서 “심사를 마치면 이 부회장은 종전 관례에 따라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신병처리 방향이 결정되면 특검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다른 대기업들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특검 안팎에서는 다음 타깃으로 SK를 첫 손에 꼽았다.
특검은 삼성의 뇌물공여액이 총 430억원이라고 판단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이 포함됐다. 또 회삿돈을 이용해 뇌물공여를 했기 때문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죄도 적용했다. 이에 따라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53개 대기업은 뇌물죄와 횡령 혐의로 특검의 수사대상에 오르게 된다. 다만, 특검은 입건 범위를 최소화하겠다는 대원칙을 세웠다. 따라서 혐의가 높은 특정 기업들에 수사력이 집중될 공산이 크다.
법조계는 재단 출연 기업들에게 과거 일해재단 사건처럼 포괄적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제3자 뇌물공여죄를 적용하는 데는 대가성 입증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특검은 삼성의 경우 이 부회장의 승계와 관련된 부분에 부정청탁이 있다고 봤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공단의 찬성 의결 건이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합병에 개입한 혐의로 특검 1호로 구속기소됐다. 다른 기업들도 수사 과정에서 부정청탁 여부를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다수의 대가성 정황이 드러난 SK, 롯데가 긴장하고 있다. 양사는 이미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고 주요 경영진이 출국금지된 상태다. SK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진술이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안 전 수석은 16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 대통령 지시로 복역 중이던 최태원 회장의 사면을 검토했다고 진술했다. 또 최 회장이 2015년 8월14일 사면돼 풀려나기 전 SK 측이 미리 결과를 알고 있었음도 시인했다. 2015년 8월13일 김창근 당시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안 전 수석에게 ‘하늘 같은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란 문자를 보낸 사실도 확인했다. 그보다 3일 앞선 10일에는 김영태 부회장이 수감 중인 최 회장을 찾아가 박 대통령의 사면 결정을 알리면서 "분명하게 숙제를 줬다"고 말한 녹취록을 특검이 확보했다. SK 관계자는 '숙제'와 관련해 "투자와 고용창출 등 경제 살리기 차원에서의 기업 과제"라며 대가성을 전면 부인했다.
롯데는 지난해 5월말 K스포츠재단에 ‘하남 엘리트 체육시설 건립’ 명목으로 70억원을 추가로 출연했다가 그해 6월10일 압수수색 하루 전날부터 5일에 걸쳐 돌려받았다. 같은 해 3월14일 신동빈 회장이 박 대통령과 독대하고 4월29일 관세청이 서울 시내면세점 4곳을 추가 선정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대가성 의혹을 사고 있다. 롯데는 "재단 출연과 면세점은 관련이 없다"며 의혹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아울러 "고 이인원 부회장이 추가지원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고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광복절 특사에서 재벌 총수 중 유일하게 사면된 이재현 CJ 회장에 대한 의혹도 커지고 있다. 2015년 12월27일자 안 전 수석의 수첩에서 ‘이재현 회장 도울 일 생길 수 있음’이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 메모를 특검이 확보했다. 손경식 CJ 회장이 박 대통령에게 수차례 이 회장의 사면을 요청한 정황도 드러났다. 2014년 11월27일 독대를 비롯해 2015년 박 대통령과 만난 다수의 행사자리에서 같은 취지의 얘기를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 현 정권 성향에 맞춘 영화 제작이나 창조경제 응원 TV광고, 한류문화복합단지 K-컬처밸리 사업에 대한 1조4000억원 투자 등이 사면 대가가 아닌지 의혹이 나온다. CJ는 "이 회장의 유전병이 악화돼 선처된 것일 뿐 사면거래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한편, 재계는 특검 수사가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엄정한 수사를 하되, 경제적 파장을 최소화하고 기업을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본연의 역할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대한 신속한 수사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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