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대개 과거는 현재보다 지적 진화가 덜 됐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측면에서는 실제로 그렇다. 그러나 과거가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놀라운 진리도 지니고 있다면 어떨까? 알고 보면 정말로 그렇다.”(7쪽)
영국 저널리스트인 스티븐 풀은 신간 '리씽크(Re:think)'에서 과거 지식들의 ‘재발견’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비웃음 당하고 헛소리 취급 받았던 역사적 주장들은 ‘때’를 만나지 못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사장돼 버린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고 재고하면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혁신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풀은 책 속에서 이러한 자신의 견해를 비즈니스 이론부터 현대 기술, 생물학, 의학,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구체화시켜 간다. 서두에서부터 사례로 제시되는 것은 전기차다. 그가 보기에 전기차는 뛰어난 아이디어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 19세기 말 영국 화학자 로버트 데이비슨이 최초의 전기차를 개발했고 파리와 베를린, 뉴욕에선 전기차 택시들이 거리를 종횡무진 했었다. 물론 당대엔 풍부하지 못한 배터리 용량과 값싼 휘발유 가격 탓에 지속적인 인기를 끌지 못하고 사라졌다.
하지만 100년이 지나 일론 머스크는 전기차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다. 화석연료가 고갈위기에 있는 상황에 배터리 기술이란 빠져 있던 조각을 맞춰 부활을 시도한 것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과거 폐기됐던 아이디어를 다시 꺼내 재가공, 보완하고 새로운 가치로 탄생시켜낸 것”이라고 말한다.원시적이고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던 의료용 거머리는 2010년대에 가장 정교하게 수술하는 의학 기구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공식 승인을 받게 됐다. 의료 전문가들이 고대 인도와 그리스의 의학서부터 중세와 초기 근대 유럽에 이르기까지의 과거 아이디어를 재가공시켜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낸 결과다.
개인의 책략을 칭송하고 권장하던 1980년 냉전과 맞물려 서구에서 눈에 띄게 부활한 ‘손자병법’, 1965년 이미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반세기 이후에야 중국인 한리에 의해 대중화된 ‘전자담배’ 등도 세상의 태도가 바뀌면서 다시 빛을 보기 시작한 아이디어의 대표 사례들이다. 저자는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이 고전과 인문학에 열광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본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비즈니스 수업에서는 성공한 기업가들이 21세기 글로벌 경제 위기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프랜시스 베이컨의 철학을 파고 든다. 이들은 여러 사업 부문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에 대해 베이컨의 접근법을 적용하며 올바른 비즈니스 의사 결정과정을 배우고 있다.
현대식 인지행동치료의 이면에는 2000년 전 고대 스토아 철학자들의 ‘이성적 노력을 통한 감정적 장애 극복’이란 원칙이 숨어 있다. 그리고 현재 영국 엑서터대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주간 행사를 열며 스토아 철학을 읽고 수련법을 연습한다. 실제로 참석자들의 긍정적 감정은 9% 늘고 부정적 감정은 11% 줄었다. 다양한 사례를 들며 저자는 재발견된 아이디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린다. “아이디어는 나비처럼 핀으로 고정할 수 없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살아가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와서 수세기 동안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16, 17세기 지식사의 지배적인 관점이었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모든 아이디어는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식의 논리를 펴는 것은 아니다. 책의 절반에 걸쳐서는 인류사에 새로운 것이 창조됐던 사례들을 살피며 태양 아래 실로 ‘새로운 것’도 나왔었음을 얘기한다. 기계식 시계, 나침반, 망원경, 뉴턴의 중력 이론 등을 유례가 없는 상태에서 나왔던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 칭한다. 다만 저자는 뉴턴 이후 새로움에 대한 지나친 성공담들이 혁신을 잘못 정의해왔다고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일부 전문가들은 혁신이 무조건 독창적이고 유례가 없으며 과거로부터 급격한 단절을 이뤄야만 한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발견이 실은 재발견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잊고 있다. 창의성은 종종 간과됐던 아이디어가 지닌 가치를 깨닫는 상상력이나 다른 영역에 속하는 기존 아이디어들을 통합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특정 아이디어의 발견과 재발견 사이를 오가면서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결국 하나로 요약된다. 아이디어는 움직이는 것이자 때를 만날 때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런 관점에서 그는 “같은 아이디어는 시대에 따라 나쁠 수도, 좋을 수도 있기에 아이디어의 세계는 움직이는 표적과 같다"고 말한다. 또 “재고와 재발견의 기술은 권위, 지식, 판단, 옳고 그름, 생각 자체의 절차에 대한 우리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서 출발한다”며 “때로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길이 될 수 있듯 한 발 물러서서 재고 해야만 우리는 제대로 사고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리씽크. 사진/쌤앤파커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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