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효정 기자] 최근 결혼식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젊은층들 사이에 허례허식을 없애고 의미는 살리는 '작은 결혼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다. 작은 결혼식이란 불필요한 규모를 줄이고 절차를 간소화 한 결혼식을 뜻한다. 작은 결혼식을 희망하는 젊은층들이 늘고는 있지만 이를 실천하는 비율은 크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가족들의 반대 등이 주요 원인이다. 실제로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결혼식을 올린 기혼 여성 11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작은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답한 응답자는 67%에 달했다. 하지만 이들 중 절반은 '실제로는 작은 결혼식을 하지 못했다'고 응답했고, 그 이유에 대해 가장 많이 꼽은 것인 '가족의 반대'(22.9%)였다. 이 같은 현실에서 합리적인 결혼 문화를 뿌리내리겠다는 각오로 창업한 이가 있다. 바로 정재은 좋은날 대표다. 결혼 문화에 대해 그가 가진 사회적 미션을 들어봤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좋은날. 정재은
(사진) 대표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그는 30대로 보이는 동안 외모와 달리 20년간 쌓은 노하우를 소유한 40대 베테랑 결혼기획자였다. 좋은날은 '허례허식에서 벗어나 의미있는 결혼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좋은날의 의미는 뭘까. 정 대표는 "좋은날은 결혼하기 좋은날, 사링하기 좋은날, 재혼하기 좋은날 등 그 어떤 날도 우리와 함께하면 좋은날이라는 의미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찍어내는 듯한 공장형 결혼식을 벗어나자"
그가 결혼 관련 시장에 뛰어든 건 20년 전이다. 꾸미는 일을 좋아했던 그는 메이크업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결혼 시장에서 발을 내딛게 됐다.
일해온 기간 만큼 보고 느낀 것도 많았다. 반나절 치뤄지는 결혼식에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을 쏟아 붓는 현실이 못마땅하기도 했다. 때마다 기업 후원으로 이뤄지는 다문화가정의 결혼식은 또다른 아쉬움을 남겼다. 수십명을 줄세운 후 30분만에 끝나는 결혼식이 과연 그들에게 특별한 날이 될지도 의문이었다.
"물건을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이 같은 공장형 결혼식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해외에서는 결혼식은 그야말로 축제인데 우리나라는 너무 판에 박힌 결혼식만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실제로 한 남녀가 백년가약을 맺는 결혼식은 결코 '좋은 날'만은 아니었다. 만만찮은 비용탓에 준비 기간에 얼굴 붉히는 일도 허다한 것을 경험한 그였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발표한 '2017 결혼비용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신혼부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택 자금을 제외한 결혼준비 비용은 총 7692만원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식장과 웨딩패키지 등 예식비용이 2214만원, 예물과 예단, 혼수, 신혼여행 등 예식 이외의 비용은 5478만원으로 집계됐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젊은 신혼부부들에게 부담이 되는 금액일 수밖에 없다.
"과거부터 내려오는 형식을 따라서 하다보니 비용 부담도 커지고, 관련 시장에도 덩달아 거품이 끼면서 불필요한 비용이 많아지고 있다. 또 드레스, 식장의 꽃 등 일회성에 그치는 부분에 비용이 들어가면서 결혼식에 대한 부담만 커지고 특별한 의미는 오히려 찾기 어려워졌다"
공장형 결혼식을 의미있고 개성있는 결혼식으로 바꾸겠단 정 대표의 결심은 이렇게 좋은날을 탄생시켰다.
좋은날에서 정 대표는 기획, 연출, 진행 등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명함에도 그를 디렉터(감독)로 소개하고 있다. 감독인 정 대표를 포함해 5명이 좋은날을 꾸려가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작은 결혼식의 '작은'은 '비용이 싸다'는 의미는 아니다. 비용만큼 의미있는 결혼식을 진행하자는 게 진짜 의미다. 이를 위해 일회성 드레스 대신 평소 특별한 날에도 입을 수 있는 커플룩을 제안하며, 식장 내 꽃장식을 예식 후 기부하는 방식으로 의미있게 쓰는 것을 추구한다. 또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등 업체와의 리베이트 관행을 끊고 거품을 없애겠다는 게 정 대표의 경영 방침이다.
이와 함께 다문화 가정, 저소득 계층을 위한 결혼식도 무료로 진행한다. 이는 기업 후원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좋은날은 올해초 육성사업을 시작으로 현재 기반을 다지는 단계로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홍보에 들어가 수익 활동과 함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예정이다.
좋은날의 첫번째 결혼식…오는 6월 콘서트형식으로 진행
정 대표는 요즘 하루걸러 하루 밤을 새고 있다. 좋은날이 준비한 첫번째 결혼식이 6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오는 6월3일 좋은날의 지원으로 예술인 한쌍이 백년가약을 맺는다. 이 부부는 어려운 형편 탓에 혼인 신고만 한 후 식을 올리지 못했다. 좋은날은 이날 종각역 내 광장을 빌려 이들 만의 특별한 결혼식을 마련해줄 계획이다. 결혼식은 콘서트 형식으로 시민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개 예식으로 진행된다. 드레스와 턱시도도 사회적기업의 지원으로 이뤄지는 작고 의미있는 결혼식이다.
"어려운 형편을 이어가는 예술인들이 많다. 부담스러운 비용탓에 이들에게 결혼식은 사치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결혼식을 꿈꾸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
이를 위해 사회적기업들이 연대해 하나의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그의 중장기 목표다. 첫 사례에서 신부의 드레스와 신랑의 턱시도를 각각 사회적기업에서 후원해주는 것처럼 연대를 통해 사회적 활동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정 대표는 "마음 맞는 기업들이 모여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을 만든다면 그 안에서 상생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며 "기업간 연대를 통해 의미있는 결혼식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결혼식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은 그의 과제다. 정 대표는 "작은 결혼식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지만 아직까지 실행까지 이어지는 비중은 크지 않다"며 "실행까지 옮겨지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함께 실버세대들의 결혼 문화에 대한 인식도 개선하고자 한다. 실버세대의 결혼시장은 앞으로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는 시장이기도 하다. "재혼을 하는 과정에서 사실혼 관계에 있지만 결혼식을 하지 않는 실버세대들이 많다. 실제로 최근 실버세대들의 결혼비중은 5년 전보다 3배 가량 증가헀지만, 주변에서 결혼식을 본 적은 드물다.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결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
아직은 갈길이 멀다고 말하는 그다. 하지만 뿜어져 나오는 열정은 그의 꿈이 그리 멀리 있지 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좋은날을 만든 후 처음으로 열리는 고객 결혼식을 앞두고 팀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좋은날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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