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지난 23일 개최한 대선 TV토론은 실망 그 자체였다. 38%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후보자들의 정책에 대한 비전 제시와 검증이 부실했다. 각 후보의 정략적인 일방통행 질문이 난무했다.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정책으로 경쟁하기보다는 후보자의 과거 문제를 들추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네거티브 공방에만 열을 올릴 뿐이었다.
주제를 벗어난 상호 후보 간 공방이 줄을 이으면서 정작 토론 주제인 외교안보·정치 분야의 자질을 확인할 수 있는 정책토론은 아예 실종되다시피 했다. 대선에 임하는 각 대선후보들의 공약 중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단연 외교·안보 분야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 여기에 ‘강대강’으로 맞서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로 인해 한반도 안보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위중한 상황에서 대선주자들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이날 토론의 핵심이 됐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주제와 무관한 발언들이 이어졌다. ‘돼지흥분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에 대한 각 후보들의 릴레이 사퇴 촉구 발언은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이해하고 넘어갈만했다. 하지만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북한의 의견을 물었다는 ‘송민순 쪽지’ 파동과 가족 불법 채용 논란은 상대방 흠집내기에 불과한 공세였다는 지적이다. 안보 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지경인데도 과거 문제의 진실 가려내기에만 혈안이 된 것이다.
특히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일대일 공방을 시도하며 주제와 벗어난 토론을 진행하는 태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안 후보는 문 후보에게 “제가 갑철수입니까. 안철수입니까”라고 물어보면서 문 후보 측이 작성한 것으로 보도된 네거티브 문건을 문제 삼았다. 사전에 준비된 손팻말도 눈길을 끌었다. 주제와 동떨어진 자료까지 미리 준비하며 이날 정해진 주제는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 것이다. 안 후보는 이후에도 “내가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냐”며 주제에서 빗겨난 논지의 질문을 거듭 캐물었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 후보에 대한 검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이 가져야 할 지성과 통찰력, 미래에 대한 비전을 종합적으로 진단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우리는 지난 2012년 대선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검증 실패로 대통령 탄핵과 구속이라는 수치스러운 역사를 옆에서 지켜보며 우리들 모두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지 않은가. 어느 후보의 말처럼 정책 경쟁 없는 토론으로 국민들 좀 그만 괴롭혔으면 한다.
박주용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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