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최기철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법무부 장관으로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내정했다. 지난 16일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후보자에서 자진해서 사퇴한 지 열하루 만이다. 박 후보자는 안 전 후보자와 마찬가지로 비검찰·학자 출신이며, 진보적 성향의 법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장관에 오르게 되면 같은 학자 출신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합을 맞춰 법무·검찰 개혁을 이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박 후보자는 그동안 검찰 개혁과 관련한 여러 연구와 함께 적극적인 의견도 표명해왔다. 특히 문 대통령이 조 수석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한 것을 두고 공개 지지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조 수석 임명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검찰 출신이 민정수석을 해야 한다는 것은 보수 정권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선입견"이라며 "검찰만이 사정 기관을 잘 관리할 수 있다는 논리는 말이 안 된다.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법학자가 훨씬 적임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검찰 제도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도 줄기차게 제기해왔다. 특히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지적이 예리하다. 박 후보자는 지난해 초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 검찰은 수사에도 한계 영역이 설정돼 있고, 기소 여부도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검찰이 독점적으로 갖는 공소권은 국민으로부터 받은 권한이다. 검찰의 개혁은 검찰권이 국민 위에 군림을 허용하는 권력이 아님을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계와 법조계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학자인 박 후보자의 지명에 대해 다소 의외란 반응을 보이면서도 문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여실히 담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장관으로서 요구되는 과제가 검찰 개혁 등 시대의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개혁자문위원회, 형사정책연구원 등 활동으로 검찰 조직과 크게 적대적이지는 않다고 본다"며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지녔다"고 덧붙였다.
전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 노영희 변호사는 "그동안 하마평에 들어있는 명단에서는 개혁이 안 된다고 판단해 다른 풀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문 대통령의 의지를 확고히 한 인사"라고 평가했다. 또 "박 후보자 내정은 '검찰 저항 등을 끝까지 막겠다', '개혁을 흔들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신 검찰총장은 검찰 출신으로 임명해 완충 역할을 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후보자는 이날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세종로출장소 인사청문회 준비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개혁에 대한 여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에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돼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문재인 정부의 개혁 과제인 법무·검찰 개혁을 반드시 실현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상식과 원칙에 부합하는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통합과 소통으로 민생안정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전남 무안군 출생의 박 후보자는 연세대 법학과를 거쳐 독일 괴팅겐대 법학부에서 형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달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로 선임됐다. 1998년 대검찰청 검찰제도개혁위원, 2003~2005년 대검 검찰개혁자문위원회 위원, 2007~2011년 법무부 형사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이날 함께 지명한 박은정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과 신현수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인선도 문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박 위원장은 대표적인 법철학자로, 사회적 약자 보호와 생명윤리 등 다양한 인권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박 위원장 지명 소식이 전해지자 학계와 법조계, 시민단체에서는 국민의 권익 보호를 위해 갖춰야 할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인물이라며 반겼다. 박 위원장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아세아여성법학연구소 소장, 대학교원임용양성평등추진위원회 위원,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신 실장의 기용은 검찰 출신 첫 기조실장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문 대통령이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참여정부 민정라인’의 수장을 국정원 요직에 기용하면서 검찰 개혁 못지않게 국정원 개혁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임명된 김준환 2차장, 조남관 감찰실장과 함께 신 실장은 문 대통령이 참여정부 민정수석으로 근무할 때 사정비서관으로 문 대통령을 보좌했다. 1년간의 청와대 생활을 끝내고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로 옮겼지만, 2012년 대선 때는 물론이고 19대 대선 때에도 법률지원단장을 맡아 지근거리에서 문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박상기(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27일 오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광화문의 한 빌딩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최기철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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