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만인보로 읽는 한국사-81화)담배 연기에 실린 애환
“눅진눅진한 풀담배 맛 / 생의 오랜 고독을 녹인다”
2017-09-18 08:00:00 2017-09-18 13:34:06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가 담배 피우시던 모습이 기억의 사진첩 속에 한 장면쯤 남아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연로한 마을여성들을 마주쳤을 때, 모여 앉아 담배를 피우던 그들의 주름지고 햇볕에 탄 얼굴과 울퉁불퉁한 손마디에서 우리네 어머니·할머니들의 모습을 느낀 적이 있다. 그들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 한 모금에 담겨 있을 수십 년 세월 곤곤한 삶의 흔적은 산자락에서 밭일을 하다 쉬는 참에, 논두렁에서 새참을 먹은 후에, 툇마루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던 할머니·할아버지들의 손마디에도 배어 있다.

전민조의 '담배 피우는 사연'展'에 전시된 한 농부의 사진. 사진/뉴시스
 
한반도의 담배 역사
필자가 학창시절 농촌활동을 처음 갔던 곳은 충청도였고 처음 배정받은 작업은 담뱃잎을 따는 일이었다. 해가 떠 있는 동안 내내 서서 담뱃잎을 따고 돌아올 적이면 검은 담뱃진으로 찐득찐득해진 흰 목장갑을 보며 도시에서 자라느라 알지 못했던 보람을 처음 느껴보기도 했다. 해 질 무렵 오늘 담배를 몇 갑 땄네, 농담하며 숙소로 돌아가던 학생들에게 마을 주민 한 분이 손가락으로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을 가리키며 담배 건조장이라 알려주셨다. 당시가 1980년대였으니, 30여 년이 지난 오늘 담배 재배 농가가 많이 사라진 만큼이나 이런 건조장들도 전만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한때 농가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잎담배는 외국산 담배의 점유율이 높아지고 금연인구가 늘면서 재배 농가도 줄고 재배 면적도 급감했다. 금연의 경우, 무엇보다도 자신의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으려는 흡연자들의 노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금연정책에 따른 불편과 담뱃값 인상에 의한 영향도 크다고 할 것이다. 1980년대 보건사회부의 금연 캠페인은 1995년 1월 15일 ‘국민건강증진법’이 제정되고 9월 1일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에 따라 법이 시행되면서 미성년자에게 담배 판매를 금지하고 공공시설에서 금연을 의무화하는 등, 정책적으로 전개된다. 2000년대에 들어와 수입담배의 수요량은 계속 증가하고 국내판매용 제조담배의 국산 원료잎담배 사용 비율은 외국산과의 가격경쟁에서 밀려 계속 낮아지는 것을 볼 때 담배 재배 농가의 수가 현저히 줄어든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담배의 기원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의해 전파된 것으로 보기도 하고 17세기 초 광해군 때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 초기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담배를 피우다가, 신하들이 담배 피우는 것을 싫어한 광해군으로 인해 윗사람 앞에서는 담배를 못 피우는 예법이 생겼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18세기 말 정조 때는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에 ‘담배 썰기’가 등장하고 신윤복의 풍속화에도 긴 담뱃대를 문 기생과 양반들이 종종 등장할 만큼 담배가 애용되었다.
 
혜원 신윤복 '건곤일회첩' 중 일부. 사진/뉴시스
역사적으로 담배사업이 국가권력과 밀착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참고: 강준만, <담배의 사회문화사 : 정부 권력과 담배 회사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인물과사상사, 2011.) 예를 들어,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은 1879년 궐련 담배 ‘히어로(hero)’를 조선에 들여와 조선의 궐련시장을 차츰 장악해가게 된다. 1890년대는 담배 수입이 증가하던 때였다. 1894년 김홍집 내각이 사고 위험을 이유로 거리에서의 담뱃대 사용을 금지하는 법령을 반포한 것도 사실은 담뱃대 대신 일본의 궐련 담배를 피우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담뱃대 규제는 제조 연초의 수요를 증가시켜 1896년 이후 외국자본이 조선에 연초제조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조선총독부는 1921년 ‘조선연초전매령(朝鮮煙草專賣令)’을 제정해 세입(稅入)을 강화하는데, 이를 담당했던 조선총독부 산하 전매국은 해방 이후 조선군정청 전매국으로, 그리고 1948년 남한 정부의 전매청으로 계승된다.
 
담배 이름에 담긴 의미
예전의 담배 이름들은 한글이어서 얼핏 보면 단순한 정감이 가지만, 그 안에는 사실 각 시기의 사회적 상황들이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 광복을 기념해 1945년 9월 조선군정청 전매국이 담배 ‘승리’를 출시했는데 이 담배는 쌀 한 말이 45원이던 시절 3원에 판매되던 고가의 궐련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농민을 비롯해 국민의 다수가 애용했던 유명한 쌈지담배가 ‘풍년초’이다. 1955년에 출시된 이 담배의 담뱃갑에는 벼 이삭 그림이 그려져 있어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비사표 성냥 비호 아닌 비사라
비사표 성냥통 성냥골 세게 쳐대야
겨우 불이 생긴다
 
홀아비 지청로 씨 수염발 고슴도치였다
풍년초 말아
눅진눅진한 풀담배 맛
생의 오랜 고독을 녹인다
 
성경책 찢어 만 담배맛
마태복음 맛
누가복음 맛
< … >
 
소설책 찢어 만 담배맛
이광수 맛
<원효대사> 맛
<무정>
<유정>
<사랑> 안빈 맛
 
김내성 맛
방인근 맛
<국보와 괴적> 맛
 
어제도 오늘도
필요없다
내일도 필요없다
 
2월 보리밭
똥거름냄새만 바람에 실려왔다
 
아버지
어머니 생각도 필요없다
자식도 필요없다
 
동네 구장이 지나다
극빈자 구호사업 알려주고 간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공자도
누구도 필요없다
십자가도 전혀 필요없다 나무아미타불도 없다
6·25사변이 왜 일어났는지도 알 필요 없다
(‘풍년초’, 18권)
 
시의 처음을 장식하는 비사표―날개 달린 사자의 비상하는 모습이 그려진―성냥은 80년대에 일회용 라이터가 등장하기 전까지 호황을 누린 성냥산업계의 대표 주자로, 담배의 대표 주자였던 풍년초의 동반자라 할 수 있겠다. 풍년초가 잎담배인지라 담뱃대에 넣거나 종이에 말아 피워야 하니 담배 생각이 간절할 때 혹자는 성경책도 소설책도 찢어 피울 수 있었으리라. 물론, 기독교인이라면 성경책을 찢어 담배를 마는 ‘불경함’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절 이 땅에 들어와 청교도 정신으로 담배를 죄악시하던 미국 선교사들이 듣는다면 기절할 일이겠다. 시에 언급된 소설가들과 소설책들은 고은 시인이 소년 시절 읽었던 책들이고 그 저자들이다. 시의 후반부에서 느껴지는 쓸쓸함과 부정적인 초월성은 “홀아비 지청로 씨”가 “눅진눅진한 풀담배 맛”으로 “생의 오랜 고독을 녹”일 수밖에 없음을, 그 잎담배 하나로 위안 받을 수밖에 없음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킨다.
 
한편, 1949년 국군 창설 기념으로 생산된 최초의 군용담배 ‘화랑’은 <전우야 잘 자라>라는 노래 속에 가사로 등장해(“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한국전쟁의 상흔과 함께 했다. 또한 1950년대에는 전후 복구를 기원하는 뜻에서 ‘건설’, 평화와 행복을 상징하는 듯한 ‘파랑새’, 또는 ‘진달래’ 같이 고운 이름의 담배들도 나왔다. 1958년 출시된 우리나라 최초의 필터 담배 이름은 ‘아리랑’이었다. 휴화산으로 침묵하듯 활화산으로 폭발하듯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내오는 낱말, 뼛속 깊이 스며있는 우리 민족의 눈물과 노래를 상징하는 낱말 ‘아리랑’이 담배 이름으로 된 것이다.
 
아리랑 담배와 끽연 도구들. 사진/뉴시스
 
한편 1960년대의 담배에는 정부시책을 반영한 이름들이 붙여졌는데, 5.16쿠데타 후 재건 의욕을 강조한 ‘재건’, 새마을 운동을 장려하는 ‘새마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신탄진연초제초장 준공을 기념한 ‘신탄진’ 등이 그것이다. 그밖에도 ‘새나라’, ‘상록수’, ‘청자’ 같은 이름의 담배들이 출시되었다. 1970년대에는 충무공의 애국심을 기리는 뜻에서 ‘거북선’이 발매되었고 ‘한산도’, ‘환희’ 등도 나왔다. 1980년대에는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해 ‘88’이 출시되었다 또한, 80년대를 풍미했던 ‘솔’은 1994년 저소득층을 위한 저가 담배로 전환하기 위해 가격을 출시 당시의 450원에서 200원으로 떨어뜨린 탓인지 그즈음 어느 날 갑자기 모스크바의 지하철 역 근처 야외시장으로 쏟아져 나왔는데, 이를 본 초창기 한국유학생들이 놀라움 반, 반가움 반으로 한동안 구매하기도 했다. 국산 담배가 수출되고 외국 담배가 수입되던 90년대 이후에는 ‘디스(THIS)’, ‘에쎄(ESSE)’, '심플(SIMPLE)' 같은 영어 이름들이 국산 담배에 등장하게 되니, 담뱃갑에 쓰이던 정부의 국정홍보 표어가 건강위협에 대한 경고문으로 바뀔 때까지 담배 이름의 변천사는 우리 사회가 지나온 시대 변천사의 한 특화물인 셈이다.
 
담배 연기에 실어 보내다
자고이래로 흡연자와 비흡연자 사이의 갈등은 항시 존재해 왔거니와, 예전에는 길을 걸을 때 담배를 손에 쥐고 팔을 앞뒤로 흔드는 일부 ‘몰지각한’ 흡연자의 담뱃불에 델까봐 조심해야 했지만, 이제는 어디를 가든 쫓기듯이 몰려 담배 피울 공간을 찾아 헤매야 하는 상황이 흡연자들의 안타까운 실정이다. 그러나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갈등을 논하고자 함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므로 사족을 붙일 것 없이 그저, 담배 한 모금에 시름을 날려 보내야 했던 이들에 대한, 시 두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신분에 따라 담뱃대의 길이도 달라졌던 사회에서, 이들은 50센티미터를 웃도는 장죽으로 담배를 피우던 양반들이 아니라 곰방대를 사용하던 백성들이었다.
 
너무 헌 조끼라
조끼주머니 새로 달아
그것만이 검정색이다
거기에 곰방대 꽂혀
필 담배 없어도
그 곰방대 속 담뱃진 있어
한두 번 빨면
담배는 못되어도
담배 사돈은 되어
그것으로 담배참 때운다
 
일년 농사가 헛되고 헛된 바
어이 한두 번이리오
그러나 그 헛농사로
지난 세월 보내어도
마음씨 하나 물 위에 뜬 잎새 같다
 
일제 때 강제공출로 다 걷어갈 때
숨긴 나락 발각나
지서까지 끌려가 매맞고 온 일
엊그제인데
아직껏 이 나이에 피울 담배도 없나
아가 창순아
내년에는 담배모종 좀 꼭 얻어오너라
담배 두어 포기 심어
담배잎사귀 깔고 덮고 자든지 해야겠다
 
늙은 아우가 마음먹고
갖다 준 새끼염소
< … >
창순이 아버지 그것 옮겨 매놓고 온다
 
가을이면 담배 대신
재남이네 단풍나무 단풍잎새 비벼
그것으로 담배 대신할 수 있는데
아직 아침저녁 선득거릴 뿐
낮은 아직 여름 끝이었다
(‘창순이 아버지’, 6권)
 
불씨 묻어
호박잎 가루담배
대꼬바리에 눌러담아
한 모금 들이마신다
< … >
 
그것도 담배연기라고 좀 푸르기는 푸르다
 
양반 나리 돌아가시면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라
그 방위 반푼이라도 어긋날세라
 
양반 나리 돌아가시면
그런 명산 명당에 묻히시거니와
 
호박잎 담배나 피우던 무지렁이 상것이야
죽어
그 혼백 들판으로 간다
들판으로 가
잊혀
정월대보름 들불이 된다
 
그 먹밤
그 백성 먹밤
갑오 남접
을미 남접
하늘 우짖는 들불이 되고 만다
 
익산 왕궁면 소부자네
왕머슴
도상두 할아범
 
오늘 머슴살이 생애 마치고
왕궁 들
거기로 묻히러 간다
 
고이 잠드시라 편히 잠드시라
이제 그 지긋지긋한 남의 집 고용살이 일손일랑 영영 놓으시라
(‘호박잎 담배’, 25권)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