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용훈 기자]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역사교과서 추진을 위해 편성한 예비비 중 절반 이상이 홍보비로 불법 편성된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은 갖은 편법을 동원해 국정역사교과서 홍보에 관여했고, 교육부 실무팀이 이를 직접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조사위)는 이러한 내용의 제4차 예비비 집행내역 조사 결과를 21일 발표했다. 조사위 관계자는 “그간 국회와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제기된 홍보비 편성 의혹과 관련해 우선적으로 홍보비 집행 내역을 들여다봤다”고 말했다.
조사위에 따르면 예비비 예산 편성은 당시 교육부가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구분(안) 행정예고가 시작된 지난 2015년 10월12일 요청했으며, 기획재정부가 바로 다음날인 13일 예산 배정을 통보했다. 이처럼 신속한 배정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다.
당시 교육부 기조실장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비서관은 조사위에 당시 장·차관이 사전에 청와대를 통해 기재부와 조율했기에 가능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비비 43억8700만원은 역사교과서 개발을 이유로 긴급 편성됐지만 총 예산 중 56.6%인 24억8000만원은 홍보비로 편성될 만큼 기형적이었다. 이 중 12억원(48.4%)은 관련 규정에 따라 ‘한국언론진흥재단’을 통해 집행됐지만 나머지 12억8000만원은 청와대가 관련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하게 집행했고, 교육부는 사후 행정 처리에 협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교육부 담당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주재 회의에서 전 새누리당 홍보관련자 조모씨와 전 청와대 행정관 김모씨, 전 장관 정책보좌관 강모씨 등이 홍보 방향과 업체를 제안하면 회의에 참석한 교육문화수석실 이모 비서관, 홍보수석실 오모 비서관, 정무수석실 정모 비서관이 이를 그대로 추인했다. 교육문화수석 역시 이러한 제안을 교육부 실무팀에 추진토록 지시했다.
홍보영상물 제작 업체 선정과 지상파 3사의 송출 계약절차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된 조모씨, 한모씨, 강모씨 등이 사전에 업체들과 조율을 하면 교육부 실무팀이 나서 서면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업체 현황이나 제작자 상황, 비용의 적정성 등은 일체 판단하지 못한 채 관련 비용을 그대로 지급하기도 했다.
지출은 기존 ‘역사교육지원 TF’에서 직제가 변경된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에서 집행됐다. 이때 이루어진 주요 불법 행위로는 ▲국무총리령 위반 ▲국가계약법 위반 ▲업무상 배임 혐의 ▲직권남용 협의 ▲회계질서 문란 등이다.
조사위는 사안의 경중을 가려 엄정히 조치하기로 의결했으며, 이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국가예산에 손실을 입힌 경우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관련법에 따라 처리되도록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말했다.
향후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정에 특정 집단의 개입여부와 부적절한 정책 추진 의도 등을 추가 조사할 방침이다. 아울러 조사위 위원들은 홍보비 집행 과정 중 일부 예산을 빼돌린 정황과 다른 부처에도 유사 사례가 있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황에서 확대 수사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지난 9월2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출범식 및 1차회의에서 고석규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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