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CES가 ‘중국 전자 쇼(China Electronics Show)’가 됐다.” 홍콩 일간 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지난 1월 초 세계 최대의 IT 가전 박람회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18’을 두고 묘사한 말이다.
SCMP의 보도대로 올해 CES에 참가한 중국 기업은 전체의 3분의 1에 달했다. 400여곳에 불과했던 7년 전에 비해 3배나 급증한 규모다. 이곳에서 중국업체들은 세계 최초의 음성 인공지능(AI) 이어폰, 안면인식으로 출입과 결제가 가능한 무인마트 등 세계 시장을 ‘주도’할 신기술들을 선보였다. “전 세계의 지적재산권을 훔친다”는 비판을 받던 이들 업체가 몇 년 새 어떻게 이처럼 시장을 좌우하는 ‘선도자’로 서게 됐을까.
올해 1월 열린 'CES 2018'에서 중국 AI 업체 아이플라이텍(iFlyTek)의 직원이 실시간 번역 서비스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신간 '차이나 이노베이션'의 저자 윤재웅씨는 최근 중국 기업들의 이 같은 약진에 주목하며 그 비결을 파헤쳐 간다. 선대인경제연구소에서 중국경제센터장으로 근무하는 저자는 중국 거시경제 정책과 주력 산업 동향을 연구해 온 중국 경제 전문가다. 그는 책에서 중국만의 새로운 ‘혁신 방식‘이 중국업체와 경제를 이끈 중추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그들만의 혁신은 우선 미국의 선도 기업들을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워’ 역할에서 시작됐다. 전자 상거래업체 알리바바는 이베이를, 인터넷 검색엔진 업체 바이두는 구글을, 동영상 플랫폼 업체 유쿠는 유튜브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 웨이보는 트위터를 보며 비즈니스 모델을 그대로 차용했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국인들의 취향에 맞춘 기능을 추가하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텐센트는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개발한 ICQ라는 메신저 서비스를 차용했지만 자국민이 좋아하는 아바타 기능을 포함시키고 무료 다운로드를 홍보하면서 성장했다. 위챗은 한국의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모방 원형으로 삼되 음성으로 메시지를 전송하는 기능을 추가해 빅히트를 쳤다.
저자는 “중국 소비자들이 다양한 해외 경험과 소득 증가로 취향이 섬세해지면서 점차 베낀 제품과 서비스에 만족하지 않게 됐다”며 “이에 중국 업체들도 소비자들의 필요를 잘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을 찾아 나섰고 결국 중국에서 처음 제조(made)되는 것이 아닌, 중국에서 처음 창조(created) 되는 흐름을 만들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또 ‘중국식 혁신’의 성과가 전 세계에 촉수를 뻗어나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지난해 11월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글로벌 상위 30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에 속한 중국 기업은 10곳에 달한다. 디디추싱과 샤오미, 루진쒀 등 공유경제와 전자상거래, 핀테크 등 전 세계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이 10위권 안에 대거 이름을 올렸다.
국가별로 살펴봐도 중국 기업들의 거센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인도에서는 현재 샤오미, 오포, 비포 등 중국산 스마트폰의 시장점유율이 절반을 넘어섰고, EU에서도 20% 안팎의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시장에서는 알리바바의 쇼핑몰 타오바오와 텐센트의 음악스트리밍 서비스 죽스 등이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을 필두로 O2O와 QR코드 결제, P2P 서비스가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면서 모바일 분야는 중국이 세계 ‘넘버 1’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닌디야 고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모바일 세계에서 혁신의 최전선에 서 있는 나라는 바로 중국”이라며 “중국 기업들은 이미 ‘실리콘 밸리’ 기업들을 뛰어넘었다”고 평가했다.
올해 1월 초 열린 'CES 2018'에서 중국 치한사의 로봇 '산봇'이 소개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슈퍼컴퓨터 등 4차 산업과 관련된 ‘미래 먹거리’는 이미 우리나라를 앞지를 만큼 발전 속도가 빠르다. 매일 14억 인구가 뿜어내는 막대한 데이터, ‘문제가 되면 사후 규제하겠다’는 정부의 오픈된 태도, 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 노력 등이 병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화재 경보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100여차례의 산불실험을 허가한 중국 관둥성이나 국영은행의 거센 반발에도 텐센트, 알리바바가 주도하는 인터넷 전문은행을 허가한 중국 금융당국 등의 사례를 근거로 든다.
세계의 ‘패스트 무버’가 된 중국, 그에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때야 할까. 저자는 “규정에 없는 사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현 한국식 창업 정책이 중국처럼 혁신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며 “민간 부문에서는 대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된 산업 생태계로 기술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 실태가 바로잡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중국의 소비시장은 향후 20년간 가파른 성장세를 거듭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제2의 내수시장’으로 삼고 공략해야 한다”며 “중국을 EU(유럽연합)처럼 보고 소비층을 세분화시켜 맞춤형 전략을 짠다면 1990년대 한국이 경험했던 ‘중국 보너스 시대’를 다시 한번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차이나 이노베이션. 사진/미래의창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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