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용민 기자] 당초 3월 초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던 한국지엠 실사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매출원가율과 고금리 대출 등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와의 거래 자료 공개를 놓고 산업은행과 한국지엠의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주도권이 우리 정부 쪽으로 넘어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산업은행이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실사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7일 산업은행과 한국지엠 등에 따르면 이날까지 실사에 대한 일정과 범위 등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산업은행은 한국지엠이 매출원가율과 고금리 대출 등 의혹이 일고 있는 부분에 대한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어 실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한국지엠 쪽에서 우리가 달라는 자료를 못 주겠다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며 “매출원가율 등을 정확하게 봐야 되는데 그와 관련된 자료 제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이런 내용들을 실사 합의서에 명시할 것을 한국지엠에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국지엠 관계자는 “우리는 되도록 실사가 빨리 이뤄지기를 바라는 입장”이라며 “한국지엠은 실사에 대한 모든 준비를 끝냈고, 자료 공개도 다 준비된 상태”라고 밝혔다. 희망퇴직자에 대한 퇴직금 및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에 대한 상환 문제 등이 겹쳐 정부의 재정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라 실사를 늦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모든 자료를 다 공개하겠다고 했는데도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산업은행과 한국지엠의 입장이 부딪치면서 실사 합의가 공회전하고 있다는 평가다.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현재 제기되는 의혹들을 다 따져보기 위해 어떤 자료를 어디서부터 얼마나 살펴봐야할지 난감한 것이 사실이다. 어떤 자료를 꼭 집어서 달라고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광범위한 범위에서 자료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한국지엠 입장에서는 어떤 자료를 어떤 범위에서 달라는 것인지 정확하게 요구를 하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의 모든 자료를 통째로 넘겨줄 수는 없기 때문에 필요한 자료에 대한 명확한 요청이 먼저 이뤄져야 된다는 것이다.
특히 업계에서는 군산공장 폐쇄 결정 이후 불거졌던 한국시장 철수설이 가라 앉으면서 이제 주도권이 우리 정부에게 넘어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희망퇴직 등에 5000억원 가량의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한국지엠을 살리려는 GM의 의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우리 정부가 실사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GM이 당장 철수하기는 힘든 상황인 점을 감안해 이번 실사를 계기로 면밀한 실사가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장기적으로 정부가 더 고민을 하고 냉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간단히 영양공급만하고 다음 정권으로 폭탄 돌리기를 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제점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GM이 한국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상황을 전개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정부에서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우리 정부가 GM쪽에 끌려다닐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노동자들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공장폐쇄철회! 경영실사노조참여! 특별세무조사! 먹튀방지법제정!’ 대정부(산업은행, 국세청, 국회) 요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용민 기자 yongmin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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