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중국정부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 인수합병(M&A)에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 반도체 강국 도약을 목표로 자국 기업들의 M&A를 지원하는 반면, 외국 기업 합종연횡엔 제동을 건다.
24일(현지시간) 주요 외신과 업계 등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퀄컴과 네덜란드 반도체 회사 NXP의 합병 승인을 미뤘다. 자국 기업들을 보호할 추가 조치를 요구하면서다. 승인 조건으로 퀄컴이 제시한 대책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유다.
다수의 중국 기업들은 퀄컴이 NXP를 인수할 경우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며 이 거래를 막아야 한다고 정부에 강력히 주장해왔다. 퀄컴의 특허 라이센스가 모바일 결제와 자율주행 시스템 등으로 확대돼 영향력이 커질 것을 우려한다. 퀄컴은 중국을 제외한 8개 국가에서 NXP 인수 승인을 받은 상태다.
중국 정부는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 승인도 지연시키고 있다. 현재까지 중국을 제외한 한국,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7개국의 반독점 심사가 마무리됐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결정이 인수 계약 시한인 3월을 넘길 가능성도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지난 21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중국 당국과 협의 중"이라며 "잘 될 것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중국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M&A에 사사건건 반기를 드는 것은 정부 주요 시책인 '반도체 굴기'와 연관이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수입국이자 소비국으로서 반도체 생태계의 자급자족을 추구한다. 2016년 기준 13.5%에 불과한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리려 하며, 2020년까지 14나노와 28나노급 반도체 장비와 재료 등을 국산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2014년 6월 '국가 반도체 산업 발전 강령'을 발표해 국가반도체 산업투자펀드를 설립하고 최근 2년간 자국 반도체 산업에 1500억위안(약 26조원)을 쏟아부었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업고 중국 반도체 기업은 글로벌 기업에 대한 공격적 M&A를 시도하고 있으며, 개발 인력도 적극 영입 중이다. 칭화유니그룹을 비롯한 중국 반도체 기업이 2015~2016년 M&A에 투자한 금액만 83억달러에 달한다.
그럼에도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아직 미미하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팹리스(설계) 분야에서는 어느정도 경쟁력을 갖췄지만 종합 반도체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전세계 반도체 기업 매출 상위 10개 업체 중에서도 중국 기업의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다.
장하이동 진쾅인베스트매니지먼트 펀드매니저는 "중국정부가 글로벌 기업들의 확장 전략을 막으며 자국 기업들이 기술 격차를 줄일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며 "반도체 굴기를 위해 자국 기업을 보호하는 정책들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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