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휘 정치부 기자
청와대는 12일에도 국회의원 시절 ‘외유성 해외출장’과 ‘셀프 후원’ 논란 등에 휩싸인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거취문제에 대해 “입장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지난 5일 언론에서 첫 의혹 보도가 나온 이후 다양한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으나, 일주일 가까이 “해임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민의 과반수가 김 원장의 사퇴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같은 보수야당 뿐만 아니라 진보성향의 정의당마저 당론으로 김 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청와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국민의 눈높이’와 ‘국민의 목소리’를 중시한다는 문재인정부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물론 지금의 청와대 대응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재벌과 금융개혁 등을 위해 장하성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 더해 김기식 원장이라는 ‘삼각편대’를 띄우고 싶은 마음이 있으리라 짐작한다. 김상조 위원장처럼 논란 속에 취임했지만 무난히 성과로 증명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무적으로 판단해도 김 원장을 쳐낸다고 6·13 지방선거를 두 달 앞둔 야당이 공세를 멈춘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김 원장 임명 실패를 문제 삼아 인사검증의 책임자인 조국 민정수석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 청와대 핵심들까지 흔들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내부에선 여러 입장과 생각, 계산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각 비서실에 걸려있을 고 신영복 선생의 ‘춘풍추상’ 액자를 다시 한 번 올려다보길 당부하고 싶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과 같이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년 차에 접어들어 ‘초심을 잃지 말자’는 취지에서 지난 2월 각 비서실에 선물했다.
하지만 과연 지금 청와대가 보이는 모습은 자신에게 가을 서리처럼 엄격한 것인가. 또 초심에 충실한 것인가. 아직 문 대통령 취임 1주년도 되지 않았다. 아무리 재벌과 금융개혁이 중요하더라도 국민의 마음을 잃으면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다.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잃는 실수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고개를 돌리면 피안(해탈의 경지)이라고 했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내 안의 적폐에 추상같이 임하고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어떨까. 녹슬고 오염된 칼로 수술하면 상처는 찢어지고 파상풍에 걸릴 뿐이다.
이성휘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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