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환경부가 폐지 가격 하락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제지업체들과 폐지 선매입 협약을 맺은 가운데 업계 내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폐비닐 수거 거부 사태를 반면교사로 정부가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국내 폐지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18일 환경부와 업계에 따르면 8개 제지업체들은 20일까지 총 2만7000톤의 폐지 물량을 긴급 매수하기로 했다. 지난 12일 환경부와 '국산 폐지 선매입 및 비축사업' 협약을 맺은 제지업체들은 환경부에서 폐지 보관 장소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선매입을 결정했다. 그러나 환경부가 제공한 장소를 활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다른 부지를 놓고 논의하는 단계다. 환경부 관계자는 "긴급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날짜를 명시했지만 적재 장소 선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예상보다 구매가 늦어지고 있다"면서 "업체별로 최대한 빨리 진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폐지 가격 급락을 잠재우기 위해 단기적인 처방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폐지 가격이 추가로 하락할 경우 폐비닐 수거 거부에 이은 혼란이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활용품 수거업체들은 폐지 수거를 통해 수익을 얻는 대신 폐비닐과 폐플라스틱 등 다른 재활용품을 한꺼번에 수거해가는데 폐지 가격 하락으로 이들 업체들의 수익성이 악화한 상황이다. 폐골판지 가격은 작년 kg당 130원에서 올해 3월 기준 90원으로 급락하면서 일부 업체들은 실제로 수거를 중단하기도 했다.
반면 골판지업체를 포함한 제지업체들은 원재료인 폐지 가격 하락으로 호재를 맞았다. 여기에 중국이 1월부터 폐기물 수입을 전면 중단하면서 국내 폐지 수급 개선이 더해졌다. 지난해 폐지 가격이 140원대까지 오르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올렸던 제품 가격이 유지됨에 따라 이익률이 급증했다.
아세아제지(002310)와
신대양제지(016590) 등 관련 업체들의 주가도 올 들어 최대 2배까지 올랐다.
전문가들은 폐지 시장에서 국내 제품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내 폐지는 까다롭게 분리 배출해서 수입되는 외국산 폐지의 질을 못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폐지가 수급에 따른 가격 변화가 큰 품목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이번 대응은 적절하다는 평가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사무처장은 "폐지 가격은 시장 수급에 민감하기 때문에 정부가 폐지 가격이 하락할 때 우선 수매하고 공급이 부족할 때 공급하는 식으로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분리배출을 철저하게 하고 이물질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확립해서 유럽처럼 질 좋은 폐지를 수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의 수입 제한 결정으로 외국산 폐지가 국내로 몰려들어오면서 수급 불균형이 생겼지만 외부적인 악재가 발생해도 국내 제품 경쟁력이 있으면 일부 방어가 가능한데 현재는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환경부 역시 단기적인 대책 외에 장기적으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외국산 폐지 사용이 많은 부분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수출 확대와 재활용 지정사업자의 의무를 확대하는 등 전반적으로 관리가 미숙했던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다"면서 "4월 말까지 생활쓰레기 전반에 대한 대책을 발표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12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산 폐지 선매입 및 비축사업 협약 체결식'에서 홍정기 (오른쪽 다섯번째) 환경부 자연환경정책실장과 제지업체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강명연 기자 unsai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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