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냉탕과 온탕을 오가던 6·12 북미 정상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정상화 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회담 개최 결정 2주 만에 취소를 선언했으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2차 정상회담 직후 재추진을 시사했다. 북미 주요 관계자들 간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발언으로 삐걱대던 북미회담이 이번에도 이른바 ‘탑다운’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 검토가 바뀌지 않았다”며 “(회담을 위한 논의가) 아주 잘 진행돼 왔다”고 밝혔다. 공식적으로 북미 정상회담 취소 결정을 되돌리지는 않았지만 재추진을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도 직접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드러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27일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데 대한 사의를 표하고 회담 개최 의지를 피력했다.
2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회담 취소’ 결정 후에도 북미 양국은 별도 채널을 통해 논의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정상회담을 되살리는 것에 대해 북한과 매우 생산적인 대화를 하고 있다”며 “여기서 멀지 않은 어떤 장소에서 미팅이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북미 양쪽 모두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대화의 끈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위기의식 속에 문 대통령이 적극적인 중재에 나선 결과로 보인다.
후속 조치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측 회담 실무진은 27일(현지시간) 싱가포르로 출국해 현지 준비작업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파견되는 백악관 실무준비팀은 30여 명 규모로, 회담 최종 성사여부와 합의방향 등은 이후 다양한 형태의 북미 간 사전접촉을 통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도 2차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며 “북미 간에 그(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협상이 곧 시작될 것으로 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실무협상 속에는 의제에 관한 협상도 포함되어 있다”며 “의제 관련 협상이 얼마나 잘 마쳐지는지에 따라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차질없이 열릴 것인지, 성공할 것인지가 달렸다”고 설명했다.
이중 핵심 의제인 비핵화 문제를 놓고 북미 양측은 의견 차이를 좁혀가고 있다는 관측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에 동의했는지에 대해 “회담을 합의하고 실무 협상을 한다는 것은 미국에서도 북한의 그런 의지를 확인한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미국이 선호하는 북핵문제 일괄타결과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해법 사이의 대략적인 접점을 찾을 경우 회담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북한은 지난달 20일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기존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총력 집중’으로 노선 전환을 선언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아무런 조건 없이 먼저 폐기하는 등 선제적인 조치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최근들어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비핵화 해법에 대해 “물리적으로 조금 필요할 지도 모른다”며 유연함을 내비치고 있다.
결과적으로 북미 정상회담 분위기가 되살아났지만, 그 과정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긴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 억류자 3명이 귀국한 당일인 10일(현지시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3일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언론 인터뷰를 시작으로 분위기는 급변했다. 볼턴 보좌관은 북한과의 핵 협상은 ‘선 핵폐기-후 보상’ 원칙을 철저히 지킨 리비아 방식이 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북한과의 협상 조건에 핵·미사일은 물론 생화학무기도 포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16일 담화를 통해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가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강요하려 든다면 그러한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며 “다가오는 북미 정상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통첩성 발언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했던 결정적인 계기는 21일(현지시간)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시작됐다.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분명히 밝힌 것처럼 만약 김정은이 (비핵화 관련) 합의를 하지 않는다면 이번 사안은 리비아 모델이 끝났듯 끝나고 말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최선희 북 외무성 부상이 “명색이 ‘유일초대국’ 부대통령이라면 세상 돌아가는 물정과 대화 흐름, 정세완화 기류라도 어느 정도 느껴야 정상일 것”이라며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할 경우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려하는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참모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샀다. 24일(현지시간) 발표된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문 중 “당신들의 가장 최근 발언에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에 기반해 지금 시점에서 오랫동안 계획돼온 이 회담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느낀다”고 밝힌 대목이 이를 뒷받침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언젠가는 당신(김정은)과 만나기를 고대한다”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주저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며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발표 9시간 만에 김계관 제1부상은 “우리는 아무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측에 다시금 밝힌다”며 달래기에 나섰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김 제1부상의 발언을 호평하고 2차 남북 정상회담 등이 이어지며 상황 반전에 성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가운데, 25일 오후 경기도 파주 오두산 전망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관산반도 일대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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