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사법농단(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핵심인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시각이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어 또 다른 파문이 예상된다.
김 대법원장은 15일 장기간의 숙고 끝에 대국민 담화문을 내고, 이번 사태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치 방향을 발표했다. 이미 이뤄진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해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자료를 제공하는 등 적극 협조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고법 부장판사 4명을 포함해 이번 사태에 연루된 법관 총 13명을 징계하고 징계절차가 완료될 때까지 일부 대상자들은 재판업무에서 배제하겠다는 해결안도 내놨다. 차관급인 고법 부장판사 4명을 동시에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것은 우리 사법역사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입장. 그래픽/최기철 기자
법원 안팎에서 평가가 엇갈리지만, 김 대법원장이 이 같이 강수를 둔 배경에는 특별조사단 조사에서 드러난 ‘재판 거래’ 의혹이 있다. 이 의혹이 있기 전까지 이번 사태는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 단계로, ‘재판의 독립’ 침해라는 법원 내부 사건의 성격이 짙었다. 그러나 ‘재판 거래’를 시도한 흔적이 담긴 대외비 문건이 다수 확인되면서 더 이상 법원 내부의 일이 아닌, 국민과 국가 전체의 사건으로 확대됐다.
김 대법원장도 담화문에서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해결 의지를 여러번 강조했다. 우선 그는 “사법부의 존재 이유인 공정한 재판을 사법행정권자의 정책 실현을 위한 거래의 수단으로 써보려고 시도한 흔적이 발견됐다”고 의혹의 존재를 인정했다. 특히 “재판은 실체적으로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외관에 있어서도 공정해 보여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은 세차례나 언급하면서 반복해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른바 ‘재판거래’는 대한민국 법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다는 저의 개인적 믿음과는 무관하게 재판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였다는 부분에 대한 의혹 해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관들 생각은 달랐다. 대법관들은 이날 김 대법원장의 담화문 발표가 끝난 뒤 몇시간 후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한 대법관들의 입장’을 밝혔다. 대법관들은 입장문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뒤 “재판의 본질을 훼손하는 재판거래 의혹에 대하여는 대법관들은 이것이 근거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이와 관련해 국민에게 혼란을 주는 일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깊은 우려를 표시한다”고 강조했다.
또 “사법불신을 초래한 사법행정 제도와 운영상의 문제점에 대해서 철저한 사법개혁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면서도 “사회 일각에서 대법원 판결에 마치 어떠한 의혹이라도 있는 양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서는 당해 사건들에 관여했던 대법관들을 포함해 대법관들 모두가 대법원 재판의 독립에 관해 어떠한 의혹도 있을 수 없다는 데 견해가 일치했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와 대법원 재판부는 완전히 분리돼 있으며, 대법원 재판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독립돼 대등한 지위에서 합의체 참여하기 때문에 누구도 특정 사건에 관해 자신의 의도대로 판결이 선고되도록 할 수 없다는 것이 논거다.
대법관들의 이런 입장은 지난 1일 입장을 밝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생각과 같다. 그는 경기 성남시 자택 근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저는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대법원이나 하급심이나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한 적이 결단코 없습니다. 하물며 재판을 흥정거리로 삼아서 거래를 하는 것은 꿈도,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또 “일각에서, 제가 간섭하거나 개입해서 목적을 위해서 대법원 재판이 왜곡되고 방향이 잘못 잡혔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날 ‘재판 거래’의혹 자체를 부인한 대법관들은 재판에 참여하고 있는 대법관 12명과 대법관으로 임명됐지만 재판에 참여하지 않고 대법원장을 보좌해 사법행정을 보좌하고 있는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도 포함됐다. 안 처장은 특별조사단장을 겸임했다. 법원행정처장 임기가 끝나면 재판부로 복귀한다. 김 대법원장도 전원합의체 재판장을 맡는 등 대법원 재판에 참여하지만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한 입장’을 내는 데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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