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가 평화의 새 시대로 접어든 가운데 재계도 남북 경협의 고삐를 죈다. 발빠른 일부 기업들은 그룹 차원에서 전담팀을 구성, 성장한계의 대안으로 북한을 주목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담보로 불확실성이 제거되면서 재계 차원의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대북 제재 해제 등 선행 과제가 적지 않은 만큼 중장기적 관점에서 차분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6일 남대문 상의회관에서 '남북경협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지난 3월 '남북관계 전망 컨퍼런스' 이후 3개월 만에 북한과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다시 마련했다. 앞선 컨퍼런스가 북한 경제의 변화상에 초점을 뒀다면, 이번 행사는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이후의 나아갈 방향이 중심이 됐다. 이날 컨퍼런스에는 350여명의 기업인들도 참석해 최근의 남북관계와 경제협력에 대한 깊은 관심을 입증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북한 변화의 긍정적 흐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연이은 정상회담으로 해소된 불확실성과 향후 상황 전개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면서 일부에서 다소 성급하게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기대를 현실로 만들려는 방향성에는 동의하지만 충분한 정보와 판단 없이 경쟁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북한과 실질적인 교류가 진행되기까지 UN의 대북 제재 해제, 이질적인 가치관 및 경제기반 간극 축소 등 많은 여건들이 개선돼야 하는 만큼, 대한상의가 차분하고 질서 있는 협력을 유도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다.
대한상의의 주도적 움직임에 일각에서는 박 회장이 남북경협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전망했지만 청와대와 박 회장 모두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청와대는 "경협위 설치는 시기상조"라고 했고, 박 회장도 "들은 바 없다"고 일축했다. 이날 박 회장은 컨퍼런스 후 기자들과 만나 "(남북 경협까지)사전적으로 검토하고 연구할 것이 참 많다"며 "준비 과정에서 대한상의가 할 역할이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차 반복했다. 차분한 대화를 통해 남북 경협을 준비해야 한다는 대한상의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으며 묵묵히 할 일을 하겠다는 뜻이다.
현 정부 들어 재계 대표단체로 자리매김한 대한상의는 남북 협력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 국제상업회의소(ICC)를 매개로 북한의 조선상업회의소와 접촉한 경험을 살려 민간 교류의 소통 채널이 되고자 한다. 여기에는 박용만 회장의 의지도 강하게 반영됐다.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재계 인사 중 유일한 참석자였던 박 회장은 개인 페이스북에 "많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토론도 해서 제대로 경협을 전개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바쁘다"고 적었다. 그의 의중은 민간 싱크탱크인 '지속성장 이니셔티브(SGI)' 출범으로 이어졌다. SGI는 초기 연구과제 중 하나로 '남북 관계 전망 및 협력 추진 방향'을 선정했다. 초대 원장에 선임된 서영경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이날 컨퍼런스의 전문가 토론 사회를 맡기도 했다.
달라진 분위기에 기업들도 사전 준비가 한창이다. 남북 정상회담 직후 현정은 회장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린 현대그룹을 비롯해 KT, 롯데, 한화, IBK기업은행 등이 남북 경협 전담조직을 정비했다. 남북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로 전례 없는 기회가 발생할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다만 전문가들은 "북한 내 경협 여건 마련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염두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기업들은 대북 제재와 경협 가능 시점에 대한 현실적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협을 위해서는 주요 비핵화 조치가 달성되고 제재 해제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기업들은 북미간 합의만 있으면 어차피 풀릴 제재이니 지금부터 진행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석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부 기업은 북한의 내수시장 진출도 바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과세나 행정허가, 부동산점유 등 관련 제도를 마련하고 행정 프로세스도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북한의 개방이 시작되면 중국, 일본,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 진출도 활발해질 것"이라며 "한국이 경협의 파트너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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