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 기자] "치밀한 준비와 실행력으로 끊임없이 도전한다. 미래는 도전하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원이 없는 한국을 산유국으로 만들고 세계 최초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상용화로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기반을 닦은 고 최종현 SK 회장이 오는 26일로 타계 20주기를 맞는다. 최 전 회장은 10년 앞을 내다보고 미래를 준비한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최 전 회장은 지난 1973년 형님인 최종건 SK 창업주가 갑자기 별세한 후 그룹 회장에 올랐다. 그는 당시 섬유회사에 불과했던 선경(현 SK)을 원유정제를 비롯한 석유화학·필름·원사·석유까지 아우르는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석유에서 섬유까지' 가능한 수직계열화를 이루겠다는 포부였다. 당시 많은 이들이 불가능한 꿈으로 치부했지만 최 전 회장은 중동지역 왕실과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석유 사업을 끈질기게 추진했다. 결국 SK는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 현 SK에너지)를 인수했다. 최 전 회장은 1983년부터 해외유전 개발 사업에 투자를 시작했다. 유전 개발 사업은 성공 확률이 5%에 불과하지만 대규모 투자를 수반해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그는 뚝심있게 사업을 추진했다. 결국 이듬해인 1984년 북예멘 유전개발에 성공했다. 자원 빈국 한국이 산유국 대열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최 전 회장은 1991년 울산에 합성섬유 원료인 파라자일렌(PX) 제조시설을 준공해 석유에서 섬유까지 아우르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이후 그는 이동통신으로 눈을 돌렸다. 1984년 설립한 미주경영실을 통해 이동통신 산업 동향을 분석하고 미국의 ICT 기업들에게 투자하며 이동통신 사업을 준비했다. 정부는 1992년 공기업이었던 한국이동통신 외에 제2 이동통신 사업자를 공모했다. 당시 삼성이나 현대로 사업권이 갈 것이란 예상을 깨고 SK는 제2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특혜 시비가 일었다. 최 전 회장이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사돈 지간이어서 정부가 사돈에게 특혜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이에 SK는 일주일만에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이후에도 최 전 회장은 "준비한 기업에는 언제든 기회가 온다"며 직원들을 설득하며 이동통신 사업 준비를 지속했다. SK는 2년 후 문민정부 시절인 1994년 한국이동통신 민영화 사업에 참여해 낙찰 받는데 성공했다. 최 전 회장은 주당 8만원대였던 한국이동통신의 주식을 주당 33만5000원에 인수하며 과잉 투자라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해야 나중에 특혜 시비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며 "앞으로 회사 가치를 더 키워가면 된다"고 설득했다. 이후 한국이동통신은 SK텔레콤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한국을 대표하는 이동통신사로 성장했다.
최 전 회장은 인재양성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그는 1974년에 사재를 털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500달러도 안되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재단 인재들의 해외 유학비용과 생활비까지 책임졌다. 재단은 44년간 약 3700명의 장학생을 지원했다. 그 중 약 740명이 해외 명문대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80% 이상이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 전 회장은 폐암으로 1998년 8월26일 별세했다. 당시 69세의 이른 나이였다. 그는 타계하기 직전 "내가 죽으면 반드시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SK는 그의 유언에 따라 2010년 1월 500억원을 들여 충남 연기군 세종시 은하수공원에 장례시설을 준공해 세종시에 기부했다. 최 전 회장의 도전정신은 최태원 현 SK 회장에게 이어졌다. 최 회장은 반도체를 미래 먹거리로 낙점하고 2011년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이후 SK하이닉스로 사명을 변경하며 그룹에서 가장 높은 영업이익을 내는 회사로 성장했다.
최 회장이 취임했던 1998년 당시 SK그룹은 연간 매출 37조4000억원, 순이익 1000억원, 재계 순위 5위였으나 현재 매출 158조원, 순이익 17조3500억원을 기록한 재계 순위 3위로 성장했다. SK는 오는 14일부터 주요 사업장에서 최 전 회장과 그룹의 성장사를 볼 수 있는 20주기 사진전을 개최한다. 24일에는 서울 워커힐 비스타홀에서 최 전 회장의 경영철학을 재조명하는 행사를 연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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