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 기자] SK의 투자 DNA는 고 최종현 선대회장으로부터 아들인 최태원 회장으로 이어졌다. 최종현 회장은 당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10년 후를 내다본 안목과 과감한 투자로 대한석유공사(유공, 현 SK이노베이션)와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하며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확보했다. 최종현 회장이 에너지와 통신 분야에서 신 성장 동력을 마련했다면 최태원 회장은 반도체와 바이오를 그룹의 명운을 짊어질 먹거리로 낙점했다.
반도체 사업 확신으로 하이닉스 인수···선대 회장 꿈 이뤄
SK하이닉스는 1983년 설립된 현대전자산업주식회사가 모태다. 1999년 빅딜에 따라 LG반도체를 인수하며 한때 삼성전자를 제치고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 시기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와 현대그룹 계열 분리, 닷컴 붕괴에 따른 D램 시장 침체, 막대한 차입금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겹치며 채권단 관리체재에 들어가며 하이닉스반도체로 이름을 바꿨다. 시장에 매물로 나온 하이닉스는 2012년 SK텔레콤에 인수되며 SK하이닉스로 새 출발했다. 외부에서는 국내 1위 이동통신사와 반도체 기업의 결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거란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인수까지 진통이 심했다. 최태원 회장이 반도체 시장의 전망이 밝다는 확신 아래 하이닉스를 인수하기로 마음을 굳혔지만 이사회에서는 대부분이 반대했다. 높은 인수 금액과 한 번도 반도체 사업을 해보지 않았던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최태원 회장은 애널리스트를 초청해 반도체 사업에 대한 세미나를 열고, 반도체 업황이 나빠졌을 경우 SK텔레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을 했다. 반도체 경기가 약 두 번 나빠지더라도 SK텔레콤이 견딜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자 반대했던 임원들도 찬성으로 돌아섰다. 당시 하이닉스를 인수하기 위해 필두에 섰던 인물이 박정호 SK텔레콤 사업개발실장(현 SK텔레콤 사장)이다. 반도체 사업에 대한 최태원 회장의 확신은 현실이 됐다. SK하이닉스는 현재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까지 합한 그룹 주요 계열사의 영업이익 중 약 80%를 책임지고 있다. 결국 아들이 아버지의 꿈을 이룬 셈이다. 최 전 회장은 지난 1978년 반도체 사업에 대한 뜻을 품고 경북 구미 전자단지에 선경반도체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2차 오일쇼크(석유파동)라는 악재를 만나며 3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선대 회장의 꿈이었던 반도체는 40년이 지난 2018년 현재, 그룹을 이끌어가는 든든한 기둥이 됐다.
이젠 바이오···"글로벌 종합제약사로"
최근 들어 최태원 회장의 눈은 바이오 분야에 꽂혀있다. 바이오산업은 선진국형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꼽힌다. 생물 자체나 그들의 고유의 기능을 높이거나 개량한다. 자연에 미량으로 존재하는 물질을 대량으로 생산하거나 유용한 생물을 만드는 산업 분야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국가들이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며 바이오 산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SK그룹의 투자 전문 지주사인 SK㈜는 최태원 회장의 의지 아래 1993년부터 바이오제약 사업에 투자를 지속했다. SK㈜는 지난 7월 미국 의약품 생산기업 '엠팩 파인 케미컬즈'(AMPAC)의 지분 100%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SK㈜는 지난해 6월 'SK바이오텍 아일랜드"(원료의약품 생산 공장)도 인수했다.
SK는 신약 개발에도 적극 나선다. SK바이오팜은 글로벌 3상 임상이 종료된 뇌전증치료제 '세노바메이트'를 개발했다. 글로벌 임상 3상 막바지 단계다. 연내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약 승인신청을 앞두고 있다. 조현병과 인지장애, 파킨슨 등 중추신경계 질환 치료제의 개발 물질을 확보했다.
SK㈜는 아시아·유럽에 이어 엠팩을 인수하며 미국시장에도 생산 거점을 확보했다. 바이오와 제약 사업을 제2의 반도체 사업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바이오제약 사업은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거듭한 사례"라며 "글로벌 제약사의 등장이 국내 제약사업에도 자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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