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북한 핵과 미사일이 없어지고, 북미 수교가 이루어지고, 한반도에 관한 남·북·미·중 평화협정이 체결된 상황이죠. 현재 내 판단으로는, 2020년쯤에는 이에 대한 큰 윤곽이 나오리라고 봅니다.”
최근 출간된 ‘대담한 여정’에서 황방열 기자가 이상적인 한반도의 그림을 묻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렇게 답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두는 경제건설이고, 이전 시대의 정책 경로에 전면 수정을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정 전 장관은 “선대에서 이루지 못한 경제 발전을 이루겠다는 김정은과 한반도를 평화지대로 만들어 외교 업적을 이루겠다는 트럼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며 “오는 2020년까지 비핵화, 북미수교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분석한다.
정 전 장관에 따르면 ‘한반도의 판’은 이미 뒤바뀌고 있다. 북한이 핵보다 경제 발전에 강조점을 두면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시그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4개의 경제개발특구를 지정한 점이나 주요 문서에 ‘경제건설을 위해 국제사회와 적극 대화하고 협력하겠다’라 명시한 부분, 미국에 ‘주한 미군 주둔 용인’을 거론한 점 등은 정 전 장관이 보는 북한의 이례적인 ‘변화’다.
미국 역시 북한의 고도화된 미사일과 핵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협상이 필요한 실정이다. 또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억제로 이어져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이 강화되는 이점으로 작용한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의 최대 목표는 중국 견제인 만큼 북한을 통해 이를 실현하려는 목표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1990년대 러시아, 중국과 우리나라의 수교로 냉전의 절반이 사라졌는데, 북한이 미국, 일본과 수교를 맺게 되면 ‘냉전의 완전한 해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근 교착 상태가 지속된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선 북한이 CVD(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비핵화)’까지는 진입할 것이라 내다봤다. ‘불가역(Irreversible)’이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은 북한의 관점에선 리비아나 카다피의 운명처럼 체제 붕괴로 이어질 최후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미국이 북한에 CVID를 요구한다면, 역으로 북한도 미국에 CVIG(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체제보장)을 해줄 수 있냐고 물어볼 겁니다. 하지만 불가역적인 체제보장이란 것은 북한이 주권국가로서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측면이 있죠. 현실적으로 미국도 들어주기가 어렵습니다.”
북한의 경제 발전 문제 역시 그는 ‘체제 보장’이란 연장선상에서 설명한다. 맥도널드, 트럼프타워 등 미국 자본이 북한에 유입되면 미국에 의한 군사적 위협 가능성이 확실하게 해소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만을 움직이는 중국과 달리 미국은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 세계기구를 움직이는 만큼, 혜택의 범위도 넓어질 수 있게 된다. 정 전 장관은 오는 2020년 트럼프의 재선 결정이 예정된 만큼 비핵화, 수교 문제를 그 전에 끝낼 수 있다고도 전망한다.
‘한반도의 판’이 뒤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변화를 마주하게 될까. 그는 냉전 종식과 함께 근 30년간 뿌리내려온 분단 의식이 무너지고, 장기적으론 대만과 중국 식 교류협력이 허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정 전 장관은 “중국은 사회주의고 대만은 자본주의 체제이지만 결혼, 교류 등 지난 8년 간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며 “남북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또 “북한 경제가 살아나면 북한 너머 만주벌판, 연해주 등이 우리 경제의 블루오션임을 체감하게 될 것”이라며 “다만 미국은 대통령 마음대로 정치제도나 법률을 결정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만큼 향후 미 의회의 결정이 향후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한다.
담대한 여정. 사진/메디치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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