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착륙 조작설은 그나마 귀엽다고 해야 할까? 닐 암스트롱 등 목숨 걸고 달 탐사에 나섰던 사람이 들으면 발끈하겠지만, 최소한 수많은 희생자를 모독하는 주장은 아니니까. 어찌 됐든 인류의 달 착륙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한다. 주장의 근거가 반박될 때마다 나름 ‘과학적 근거’도 성실하게 찾아낸다. 국내에도 있다. 한국형발사체 시험발사체가 성공하자 그것도 ‘거짓’이라고 항의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우주 개척에 관한 의심과 논란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의 영역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할 때 대응할 수 있는 우리의 태도는 두 가지다. 무시하거나 엄하게 다스리거나. 다행히 달 착륙 조작설은 허황하고 맹목적으로 보이긴 하나 누구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명예를 훼손하진 않는다(국내외 우주개발 관련 연구자, 기술자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얻는 경제적, 정치적 이득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인류공동체의 질서를 고의로 어지럽히려는 불순한 의도 역시 지금까지는 포착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부정과 왜곡은 매우 위험하다. 심지어 그런 언행을 방치하는 것조차 용서받지 못할 때도 있다. 방치는 곧 용인이며, 때로는 동의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가 그 구분을 모호하게 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지난해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부정 발언이 담긴 게시물을 페이스북에서 차단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게 발단이었다.
저커버그는 한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은 가짜뉴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어떤 신념에 대한 게시물은 내릴 수 없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독일 정부는 즉시 페이스북과 마크 저커버그를 비판하고 나섰다. 독일에서는 ‘페이스북 법’으로 불리는 네트워크 시행법(NetzDG)을 도입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발언을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다. 이 법에 따르면 관련 게시물을 24시간 이상 방치한 소셜미디어 사업자에게는 최대 5000만 유로(약 660억 원)의 벌금 부과가 가능하다.
그 반대의 사례도 있다. 국내에도 독자층이 두꺼운 무라카미 하루키가 주인공이다. 4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난징(南京) 대학살의 희생자 수를 중국 측 주장에 가깝게 언급했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일본군이 격렬한 전투 끝에 난징 시내를 점거하고 대량 살인을 자행했습니다. 전투 중의 살인도 있고, 전투가 끝난 뒤의 살인도 있었죠. 중국인 사망자 수가 40만 명이라는 설도 있고, 10만 명이라는 설도 있지요. 하지만 40만 명과 10만 명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소설 내용이 알려지자 일본 내 우익 세력은 하루키를 ‘매국노’라고 비난했다. 인터넷상에는 “40만 명이라니 중국 주장보다 더 많다”, “근거를 대라”, “그렇게까지 노벨상을 타고 싶나” 등의 비난 댓글이 쇄도했다. 어떤 인사는 “노벨상을 타려면 중국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쓴 것 아니냐”고 비꼬기도 했다. 일본 우익 세력 중에는 난징 대학살의 사망자 수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거나, 대학살이라는 사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일본 우익의 일부는 난징 대학살을 부정한다. 한·일 강제합병이나 위안부 강제동원 등도 인정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독일 우익의 일부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한다. 실제 홀로코스트 명예훼손 소송을 다룬 영화 <나는 부정한다. Denial>에서 인종주의자이자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인 데이비드 어빙은 이렇게 말한다. “홀로코스트를 입증할 증거가 단 하나라도 있으면 가져와 보라.”
국내에서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비하 논란이 거세다. 특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북한군 개입설’에 동조하면서 이들을 정치권에서 퇴출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뜨겁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들의 주장이 일본의 난징 대학살 부정이나 홀로코스트 부정과 놀랍도록 닮았다는 점이다. 나가도 너무 나간 거다. 건전한 상식과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의 ‘부정’을 부정할 것이다. 아니 그들을 부정할 것이다. 역사적 사실로 입증된 반인륜적 범죄를 부정하는 행위는 반인륜적 범죄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했던 하루키의 말을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아무리 우리에 맞게 역사를 다시 써도 결국 다치는 것은 우리일 뿐이다. 벗어날 방법, 숨길 방법, 그런 건 없다. 만약 방법이 있다면 ‘상대조차 인정할 만큼의 사죄’, 그것 하나뿐이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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