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롱 보드를 한 손에 쥔 힙스터가 스튜디오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일렉기타와 전자앰프, 컨버터, 초대형 스피커들이 마중 나와 있었고, 그는 부지런히 서로를 연결했다. 앰프에 코드를 꽂는 손과 업다운 피킹 시 흔들거리는 주파수 바늘, 스피커에서 번개처럼 튀어나오는 무지개색 별빛 문양들.
지난 27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마룬5의 다섯 번째 서울 단독 공연. 세계적 밴드 마룬 5가 등장하기 직전의 이 짧은 영상 그림은 자유분방하지만 아주 정교히 쌓아 올려가는 그들의 음악관을 압축적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몇 초 뒤 트로피컬 하우스 풍의 경쾌한 전자음이 영상의 바톤을 이어 받고, 보컬 애덤 리바인이 매력적인 미성의 목소리로 돔을 쩌렁쩌렁 울렸다. 팝과 록, R&B의 적절한 황금비율을 연구하는 마룬 5표 ‘신 음악’이 3만 관객의 함성을 업고 일렁거렸다.
서울 고척돔에서 다섯 번째 내한공연을 펼친 마룬5.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여섯 번째 정규 ‘레드 필 블루스(2017)’ 수록곡 ‘왓 러버스 두(What Lovers Do)’로 포문을 연 밴드는 초반부터 폭발적이었다. 애덤은 마이크대를 질질 끌고 무대를 종횡하며 고음을 쏟아냈고, 두 번째 곡 ‘페이폰(Payphone)’의 후주 땐 우주 굉음 같은 기타 솔로 연주를 선보였다. 금발을 앞뒤로 흔들며 맹렬히 연주하는 제임스 밸런타인과 뭉근한 키보드 사운드를 내는 PJ모턴 역시 이들이 왜 그래미 3관왕의 세계적인 밴드인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레드 필 블루스’ 발표 후 첫 내한인 만큼 이 음반 수록곡들이 주를 이룰 거란 예상도 있었으나 밴드는 보기 좋게 그 테두리를 비켜 갔다. ‘디스 러브(This Love)’와 ‘선데이 모닝(Sunday Morning)’, ‘돈 워너 노(Don't Wanna Know)’ 등 대표곡들을 초중반부에 배치시켰고, 각 곡들은 다양한 악기들이 유기적인 소리를 축적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대부분의 곡들에선 후주 때마다 각 악기 파트의 솔로 부분들이 자유롭게 늘어지며 라이브의 묘미를 느끼게 했다.
서울 고척돔에서 다섯 번째 내한공연을 펼친 마룬5.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3년5개월 만에 한국팬들과 만난 밴드는 “신사, 숙녀 여러분, 어떻게 지냈습니까”라며 반갑게 관객들을 맞았다. 곡 중간에는 손키스를 날리며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했고, ‘에오’ 하며 퀸의 프레디 머큐리처럼 3만 관객과 모음대화를 나누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별이나 청춘의 아릿한 감정을 노래하는 언어들은 이들의 곡을 관통하는 전반적 정서다. 헌신적인 사랑을 하다 버려진 이의 슬픔(‘Payphone’)이라든지, 이별 뒤 부서진 날개마저 고쳐 보겠다는 아련함(‘This Love’)이 노래에 묻어난다. 이날 셋리스트에서도 신나는 듯한 멜로디 속 청춘과 사랑의 파편화된 감정적 부산물들이 연신 부유했다.
서울 고척돔에서 다섯 번째 내한공연을 펼친 마룬5.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이날 16곡을 쏟아낸 밴드가 앙코르를 위해 무대에 오른 마지막쯤의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꺼내든 핸드폰 조명에 칠흑 같던 공연장이 거대한 은하처럼 반짝였다.
어쿠스틱 기타를 단촐하게 튕기는 밸런타인의 손가락에 맞춰 애덤이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영화 ‘비긴 어게인’의 삽입곡 ‘로스트 스타스(Lost Stars)’.
‘신이여 왜 청춘은 젊을 때 낭비되는지 말해주세요’ ‘우리 모두는 어둠을 밝히는 길 잃은 별들인가요?’
‘길 잃은 별들’을 쓰다듬는 천상의 소리가 좌우로 움직이는 불빛 행렬에 맞춰 아른거렸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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