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청년 일자리 창출을 주문하고 있는 정부가 금융공공기관의 일자리 확대는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와 육아휴직제·탄력근무제도가 확대·시행되면서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예산 등의 이유로 국책은행의 일자리 확충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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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024110)은 올해 2분기 노사협의회 안건으로 신입행원 600명을 추가 채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달부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주당 법정 근로시간이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되는데다 지난 1분기 노사협의를 통해 은행권 처음으로 육아휴직 기간을 3년으로 늘리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기업은행 내규에 따르면 육아휴직의 경우 이미 자녀가 있는 직원은 초등학교 1학년 재학기간에 한해 사용 가능하며,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입양한 자녀 포함)를 가진 직원은 근로시간 단축근무를 신청할 수 있다.
현재 기업은행 노동조합은 초등학교 입학기 자녀가 있는 직원 등을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 연간 약 500명의 직원이 추가로 육아휴직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3월말 기준 기업은행 총 임직원은 1만3206명으로, 이 가운데 3%가 추가로 육아휴직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줄어든 인건비를 신규 채용으로 활용한다면 임직원의 노동 강도 가중 부담과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올 1분기 말 기업은행 국내외 점포가 657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점 당 1명의 인력을 충원하게 되는 셈이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노사협의회 1호 안건으로 신입행원을 추가로 채용하자고 제시했다”며 “정부도 일자리 확대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육아휴직 기간 연장 등으로 발생하는 공백을 신규 채용으로 대체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금융권 내부에서도 근무시간 감축 대비 인력 확대가 미비한 상황에서 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 시행됨에 따라 한정된 시간에 업무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노동 강도가 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전산이나 외환 등 일부 부서의 경우 근무요건이 상이하고, 특례를 인정하는 방향으로만 주52시간 근무 제도를 운영한다면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확대라는 당초 취지도 무색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책은행 한 관계자는 “부서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인력 확대에 대한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문제”라며 “주52시간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선 정부 차원에서 먼저 나서서 채용을 늘리고, 노동업무를 분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 또한 오는 8월 금융권의 직·간접적인 일자리 창출 효과를 측정해 공개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일자리 확대를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번 일자리 측정은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을 대상으로 하며, 별도 평가를 받는 국책은행은 제외됐다.
국책은행 노조 입장에서는 소관부서에서 고용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라는 모습이다. 기타 공공기관인 기업은행에서 특별채용이 이뤄질 경우 채용목적과 인원, 절차, 기준 등 채용 전반에 대한 사항을 금융위원회와 사전에 협의해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제4차 공공기관 운영위원회를 열고 기타공공기관 사전규제를 정비했다. 이에 따라 기타공공기관 예산편성과 인사운영, 이사회 운영 등과 관련한 기재부 지침에 대한 준용 규정은 폐지됐으며, 해당 사안은 주무부처 책임 하에서 운영된다. 결국 증원을 위해선 금융위 승인만 거치면 되는 셈이다.
김도진 기업은행장 역시 지난 3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IBK 내(來)일 채용박람회’에서 기자와 만나 “(노조와 신규 채용 안건을) 논의하고 있다”면서도 증원 여부에 대해선 “정부하고 얘기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당국에서는 현재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일반 채용의 경우 편성된 총액 예산 내에서 기관에서 결정하게 된다”며 “기업은행의 경우 올해 정원을 조금 더 늘렸다”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노사협의를 통해 나온 결정이 절차를 밟아 온다면 살펴보겠지만, 아직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전했다. 육아휴직 대체 인력 증원과 관련해서는 “정부 지침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재부 관계자는 “은행에 주 52시간제도가 도입된다고 관련 인력 증원을 위해 별도로 (예산을) 준비해둔 것은 없다”며 “각 기관이 편성된 예산을 운용함에 있어 효율적으로 하는 게 먼저”라고 했다. 이어 “충원이 필요하다면 먼저 소관과로 요청해 협의해야 하겠지만 단순히 증원만을 위해 하반기에 추가 예산이 나가거나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 소관의 산업은행과 기재부를 주무부처로 둔 수출입은행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지난 2016년 대우조선해양 사태 당시 혁신방안을 발표하면서 인력 감축 등을 골자로 한 쇄신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당시 자구계획을 보면 산업은행은 2021년까지 전체 인력을 10% 감축하기로 했으며, 수출입은행은 내년까지 팀장급 이상 관리자는 10%, 전직원 정원은 2021년까지 5% 줄이기로 했다.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공시된 산업은행과 수은의 총 임직원과 국내외 지점은 3월 현재 각각 3786명(97곳), 1217명(41곳)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6년 말 대비 산은 총 임직원수는 6.33% 감소했으며 수은의 경우 전체 임직원은 11% 늘어난 반면 임원은 13% 줄었다.
산은과 수은은 쇄신안 이행을 추진하면서도, 시장 상황의 변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대업 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은행 내부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 근무 환경이 바뀜에 따라 인력 증원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지난 2016년 인력 감축을 하겠다고 발표한 쇄신안이 유효한 점이 문제로 남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정부가 저출산 등의 문제를 막기 위해 육아 휴직을 장려하고, 일자리 창출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력 운용에 상당 부분 애로사항이 있다”며 “현재 탄력 근무제 등을 시행하고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명예퇴직제도 등 전반적인 인력운용 관련 개선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신현호 수출입은행지부 노조 위원장 또한 “현장에서 일할 사람은 부족한 상황이지만, 일반 민간 은행과 달리 수출입은행은 기재부가 사실상 증원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다”며 “(인력을 늘리지 못하는 것은) 일자리 창출 등을 추진하는 정부 정책과 모순된 점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인력 충원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데이터를 만들고 있다”며 “올 하반기에는 노사협의회 안건으로 인력 충원을 제안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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