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암흑 같다 느껴지는 검정색 감정도 실은 여러 겹구조의 색들로 이뤄져 있다. 슬픔, 좌절, 절망, 우울 같은 여러 감정의 색들 임을 이해한다면 그나마 그 무거움을 받아들이기 수월할 지 모른다. 10일 발매된 넬의 8집 'COLORS IN BLACK'을 관통하는 주제다. [
(넬 20주년 인터뷰①)"검정이라 느껴지는 감정도 실은 다채로운 것" 참조]
이 추상적 관념의 색들을 소리로 끄집어 내는 과정은 어땠을까. 8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카페 '벌스 가든 앤 하우스'에서 만난 밴드[김종완(보컬)·이정훈(베이스)·이재경(기타)·정재원(드럼)]는 "음악은 머릿 속에 막연히 그려져 있는 실재하지 않는 아이디어나 그림을 소리로 풀어내는 것"이라며 "멤버들과 얘기를 통해 상상 속 아이디어를 소리로 구체화시켰고, 음악적 편곡과 연주 방향 역시 그 곡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 집중됐다"고 했다.
밴드는 자체 보유 기타, 베이스만 40대가 넘는다. 메인으로 쓰는 악기는 8~9대. 앨범 작업에는 각 곡의 주파수에 맞는 악기들이 선별된다. "나무로 만든 악기들은 악기별 특유의 울림이 있어요. 악기 마다 주는 정서가 다른데, 그건 과학적으로 주파수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에요."(종완) "영화를 만들 때도 어떤 배우가 어울릴 지 정하잖아요. 음악도 마찬가지라 보면 될 것 같아요. 곡에 따라 어울리는 악기가 있어요."(재경)
밴드 넬 기타 이재경.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밴드는 소리 그 자체에서 영감을 얻어 곡을 만들기도 한다. 이번 앨범에선 수록곡 'All This Fxxking Time'이 그렇게 나온 곡이다. 태국에서 순식간에 쓴 이 곡은 악기 자체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국내에서 들고 간 기타, 베이스 각 2개, 현지에서 렌탈한 빈티지 드럼으로 스트레이트한 록을 만들어 냈다. "달달한 이펙터 같은 것 없이, 별다른 세팅 없이, 그저 악기들이 주는 소리에만 영감을 받고 만들었어요."(종완)
'All This Fxxking Time'의 가사는 악몽에서 착안한 곡. 실제로 보컬 종완은 8년 전부터 그림자가 벽을 타고 올라가는 꿈을 종종 꾼다고 했다. "사람의 그림자라기 보단 넝쿨, 굉장히 무섭고 기이한 형태. 그 때의 느낌에 관한 곡이에요."(종완)
곡에서 숨쉬기 어렵고 답답한 느낌은 마스크처럼 그려진다. "얼굴에 누가 검정 마스크를 씌여놓는 영화씬처럼. 가사에도 '벗겨달라'는 식의 표현이 있는데 그런 의미입니다."(종완)
밴드 넬 보컬 김종완.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태국에서 직접 쓴 곡은 이 곡을 포함해 'Slow Motion', '오분 뒤에 봐', '꿈을 꾸는 꿈' 등 4곡. 총 9곡이 실린 앨범 수록곡 중 절반에 해당된다.
"'All This Fxxking Time' 외 나머지는 대부분 핸드폰에 흥얼 거렸던 것들이었어요. 그곳에서 작업하며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나오게 됐죠."(종완)
일례로 곡 'Slow Motion'은 어쿠스틱 기타로 포크처럼 만들려던 곡. 태국에서 작업하다 보니 일렉트릭 기타, 피아노 구성을 더한 앰비언트적 소리로 완성됐다.
넬의 음악은 줄곧 섬세한 인간의 감정을 그려왔다. 'C' 앨범의 'Dreamcatcher'나 'Newton's Apple'의 'Ocean of Light'를 돌아보면 어깨를 '톡' 두드려주는 느낌도 적지 않았다. 남들의 만족보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음악을 만든다는 이들의 곡이 어떻게 이런 위로와 공감 현상을 발생시키는 걸까. 밴드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해 물었다.
"저희의 음악을 듣고 공감과 위로를 느끼신다면 뮤지션으로서 기쁘고 보람된 일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사실 듣는 사람들이 기운을 냈으면 좋겠다 해서 곡을 쓰진 않아요. 그런 느낌의 곡들은 대체로 넬이 넬로서 하는 얘기거나, 제 자신에게 하는 얘기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 해도 공감과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굉장히 좋은 현상이라 생각을 합니다."(종완)
넬 정규 8집 'COLORS IN BLACK'.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이번 앨범 곡들은 주로 얘기하는 화자가 2명이다. 자신이 자신에게 혼자말을 하는 느낌. 어떤 안좋은 일들이 생겨도 결국 우린 엔딩이 정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스스로 묻고 답한다.
"음악은 결국 듣는 사람의 몫이라 생각해요. 어떻게 들어주세요라고 콕 집어 제가 얘기할 수 없는 이유일 거예요. 이번 앨범의 경우 어떤 분들은 편하게 들으실 수도, 또 저와 비슷한 감정을 지닌 분들이라면 전작보단 훨씬 무겁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종완)
자신의 소리를 완성하기까지, 밴드의 눈 역시 오롯이 자신들을 향한다. 작업 중엔 대중이 기대하는 것 보다 자신이 기대하는 퀄리티에 부담이 크다. 대신 마스터링 후 앨범이 손에서 떠난 시점부턴 그 반대가 된다.
이날 카페에서 두 번째로 들려줄 'Cliché' 때의 순간. "스피커가 웅웅 대는 것 같다"며 신경 쓰여하던 종완이 직접 스피커로 이동해 소리들을 매만졌다. "마스터링 이후엔 대중들의 기대감, 그런 게 즐거운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한편으론 우리 음악에 대해 얘기를 해준다는 게, 그만큼 다행이라 생각을 합니다. 좋든 말든 신경 안쓰는 것보다는 훨씬 행복한 부담이 아닐런지."
밴드 넬.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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