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등용 기자] 규제 차등 적용의 대표 정책으로는 ‘규제 샌드박스’가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 유예 시켜 주는 제도다. 해외에선 이미 많은 선진국들이 시행 중이며 우리나라도 지난 1월 도입한 바 있다.
하지만 기업 현장 체감도는 크게 다른 느낌이다. 해당 부처 간 이견 조율 문제와 개별 기업에 초점이 맞춰진 미시적 접근 방식 등 큰 틀에서 규제 샌드박스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1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6월까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0건, 산업통상자원부 20건, 금융위원회 40건 등 총 70건의 규제 샌드박스 신청을 처리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체감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는 부분이다. 부처 간 합의가 안 된 안건의 경우 규제 샌드박스 대상에서 제외돼 불확실성을 점검한다는 제도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과기정통부 규제 샌드박스 신청 1호인 블록체인 기반 해외 송금 서비스 ‘모인’은 부처 간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심의되지 않고 있다.
일본의 경우 내각부가 규제 샌드박스의 단일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심의 기구로 혁신적사업활동평가위원회를 설치해 복잡한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고 신기술 관련 규제 개혁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영국은 셰일가스 환경 규제기관 그룹을 만들었다. 셰일가스 산업의 규제를 소관하는 3개 규제기관인 환경청, 보건안전청, 오일과 가스국이 단일 창구를 만들어 관련 규제를 집행하고 있다.
곽노성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규제 샌드박스를 여러 부처가 각각 시행하면서 발생하는 혼선을 줄이고, 행정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업무 프로세스를 정비하고 관련 규정을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규제 샌드박스가 미시적 접근과 함께 구조적 문제를 개혁할 수 있는 거시적인 방향에서 운영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작은 변화에 치중해 정작 시스템 개혁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다.
곽 교수는 “현장 애로 해소만으로는 다수가 체감할 수 있는 규제 개혁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게 역대 정부 규제 개혁의 교훈이었다”면서 “당장은 기업 애로 해소를 위해 규제 샌드박스 처리 건수가 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규제 시스템을 개혁해 처리 건수를 낮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이 지난 7월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 시행 6개월의 성과와 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등용 기자 dyzpow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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