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작년 말 현대중공업에 하도급 ‘갑질’ 제재를 발표했지만 피해업체들만 여전히 ‘속앓이’를 하고 있다. 당초 예고한 과징금 부과 등 행정조치는 공정위 ‘의결서’가 제재 대상에 도달한 뒤에야 효력을 발휘하는데, 의결서 작성조차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하도급 피해 대책위 관계자들이 지난달 21일 한국조선해양 계동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최서윤 기자
9일 업계와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가 지난해 12월18일 발표한 하도급법 위반 혐의 제재 의결서는 아직 현대중공업(한국조선해양)에 전해지지 않았다.
공정위 의결서는 법원의 ‘판결문’ 격으로, 당초 발표한 제재 조치는 실제 의결서가 제재 대상에 전달된 뒤에야 이뤄질 수 있다. 또 의결서 송부 30일 내 공정위에 이의를 신청하거나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이의신청 시엔 재결 절차를 밟게 돼 시간이 더 소요된다.
앞서 공정위는 △사전 서면발급의무 위반 △부당한 대금결정에 대해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에 시정명령과 검찰고발, 현대중공업에 과징금 208억원을, △공정위 조사방해에 대해 한국조선해양에 과태료 1억원, 직원 2명에게 과태료 2500만원을 부과키로 한 바 있다.
이중 실제 이뤄진 건 ‘결정사항’인 검찰 고발뿐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나머지 행정처분은 ‘의결사항’이라 의결서가 먼저 송부돼야 하는데 내용이 방대해 의결서 작성에 시간이 좀 걸리고 있다”며 “이르면 이달 말에서 다음 달 초쯤 나올 것 같다”고 전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11월 26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열린 '7대 공기업 공정경제 정착 및 확산을 위한 협약식'에 참석한 모습. 사진/뉴시스
차일피일 미뤄지는 행정처분에 제재 대상인 현대중공업은 느긋하다. 회사는 당초 “법적 절차를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힌 만큼, 공정위 발표 이후 거세지는 업체들의 피해보상 요구에도 절차와 내용상 의결서 송부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아무 대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피해 업체들만 속이 탄다. 현대중공업 피해업체대책위원회는 지난 달 13일부터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집 앞에서 연일 시위를 이어온 데 이어, 같은 달 21일엔 계동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속한 피해보상을 요구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애초부터 공정위가 ‘봐주기’식 제재를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도협 대한기업 대표는 지난 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글을 올려 자사 피해사실에 대해 공정위가 인정한 피해액이 실제 피해액에 한참 못 미치고, 혐의도 서면미교부만을 인정해 민사소송으로 배상받기 어렵게 됐다는 취지로 호소하기도 했다.
공정위가 소극적이란 지적도 있다. 피해업체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는 공정위 결정이 유리하게 참작될 수 있는데, 실제 법원에는 의결서만 제출될 뿐 공정위가 직권으로 조사한 자료들은 기업의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제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오는 12일 삼성중공업의 하도급법 위반 여부 심의도 열지만, 실제 행정처분까지는 또 몇 달이 더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조선3사 피해업체들은 같은 날 오전 11시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적극적인 피해 구제를 촉구할 예정이다.
삼성중공업 하도급 '갑질' 피해를 호소하는 협력업체 대표들은 서초동 삼성그룹 사옥 앞에서 연일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오는 12일 삼성중공업의 하도급법 위반 여부를 심의하지만 실제 행정처분까지는 몇 달이 더 소요될 전망이다. 사진/삼성중공업 피해대책위 제공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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