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신림동에 있는 한 여성의 집에 들어가려고 시도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 대해 항소심에서도 징역 1년이 선고됐다. 1심과 마찬가지로 강간미수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재판부는 숲과 나무에 비교하면서 숲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윤종구)는 24일 성폭력처벌법 위반(주거침입강간) 등 혐의를 받는 조모씨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1심에 이어 조씨에게 청구된 보호관찰명령도 기각됐다.
조씨는 지난해 5월28일 오전 6시30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원룸에 사는 한 여성을 뒤따라가 10분 이상 현관문을 열려고 시도하는 등 집에 침입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조씨의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이 인터넷에 확산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1심과 같이 주거침입 혐의만을 유죄로, 강간미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에 대해 "피고인 행위에 대한 사회적 엄벌 요구가 있다거나 공소 제기된 범죄 유형이 성폭력 범죄란 이유만으로 검사의 증명책임 정도를 낮춰서는 안 된다"며 "강간 범행을 향한 피고인의 직접적인 의도나 생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이 사건에서 단지 '강간이란 결과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개연성만으로 쉽게 그 고의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특히 "숲, 나무와 비교해 보겠다"며 이번 판단의 의견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침엽수 숲을 보면 언제나 소나무 숲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소나무인지, 전나무인지, 잣나무인지, 낙엽송인지, 주목인지를 가려야 하는지, 소나무 중 홍송인지, 백송인지, 금강송인지를 가려야 하는지에 관한 시각 차이가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숲만 증명되면 형벌이 가능하다는 국가도 있었지만, 대한민국 형법은 사건 구성주의, 즉 개별 죄형법정주의 입장"이라면서 "숲에 관한 요건과 나무에 관한 요건이 모두 필요하고, 숲만이 아니라 나무도 봐야 하며, 나무도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성적인 의도, 성폭력이란 범죄 의도가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며 "이러한 의도만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즉 숲만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사전에 법률로 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민국 법률에는 성폭력이란 범죄 의도 일반의 미수를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고 덧붙였다.
또 "그렇다고 개별 구성요건인 강간으로 의제하거나 추정할 근거도 없고, 강제추행으로 의제하거나 추정할 근거도 없다"며 "침엽수 숲 안의 나무들 종류가 다양하듯이 성적인 의도, 성폭력이란 범죄의 개별 구성요건도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그렇다고 주거침입이란 범죄를 한 피고인에게 일반 주거침입 사건과 동일한 양형을 할 수도 없다"며 양형 이유도 밝혔다. 재판부는 "개별 구성요건에 대한 증명은 부족하지만, 주거침입의 목적, 의도 등에 관한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피고인의 설명만으로는 성적인 의도, 성폭력이란 범죄 의도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27일 진행된 조씨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주거를 침입했을 때 범행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강제추행미수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했다.
1심은 "피해자 주거의 평온을 해치면서 성범죄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야기한 사실만으로도 조씨를 엄히 처벌할 수밖에 없다"면서 조씨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성폭력처벌법 위반(주거침입강간) 등 혐의를 받는 조모씨가 지난해 5월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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