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미루면서 채권단 KDB산업은행과 아시아나항공이 '플랜B'(차선책)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로 아시아나항공 재무구조가 더 엉망이 되면서 HDC현산에 떠넘기는 건 무리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2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세번째 연기한 상태로, 인수 시점 또한 특정하지 않았다. HDC현산은 인수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해외에서의 기업결합 심사 승인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항공사는 인수·합병(M&A) 시 한국뿐 아니라 영업을 하는 해외 국가에서도 기업결합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실제 러시아가 아직 승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코로나19로 빚이 더 늘었고, 경쟁 심화로 앞으로 큰 폭의 실적 개선도 어려울 것으로 보여 HDC현산이 인수 결정을 미룬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올 1분기 전 분기보다 부채비율이 12배 이상 급증하며 자본잠식이 코앞인 상황이다.
HDC현산과 손을 잡고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한 미래에셋대우의 호텔 매각 작업에 차질이 생긴 것도 '포기론'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HDC현산과 미래에셋대우가 협력한 건 항공업과 호텔업의 시너지를 위해서였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두 기업이 함께 구상한 미래 계획마저 물거품이 된 상황인 셈이다.
코로나19로 멈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들이 인천국제공항에 주기 돼 있다. 사진/아시아나항공
산은, 새 인수자 찾나
HDC현산이 인수를 미룬 사이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가 더욱 악화하면서 채권단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부실기업을 안겼다가 자칫 HDC현산까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책은행인 산은도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아시아나항공의 1분기 별도 기준 부채총계는 11조9701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6000억원가량 늘었다. 항공 영업 환경도 악화하며 영업손실 폭도 커지는 상황이다. 반면 HDC현산의 1분기 자본총계는 2조6326억원으로 HDC현산이 가진 돈보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훨씬 크다.
앞서 산은은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빠르게 마무리 짓기 위해 지난해 1조6000억원을 지원한 데 이어 1조7000억원도 추가로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달 만기였던 아시아나항공 여신 1조1000억원 납부도 연장해주며 HDC현산의 추가 부담까지 덜어줬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하기만 했다.
이렇게 되자 업계에서는 산은이 새 인수자 찾기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나름 파격적인 지원에도 아시아나항공 재무구조는 더욱 나빠지고 있고 HDC현산도 대금 납입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아시아나항공 전환사채(CB) 투자자들도 100억원 규모 조기 상환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지며 HDC현산 철수와 별개로 아시아나항공 경영 정상화가 쉽지 않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산은 내부에서 HDC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반대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자본잠식 등 인수가 무리일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산은은 러시아 기업결합 심사가 나오면 HDC현산에 인수 의사를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관련 기자회견장에 들어가는 정몽규 HDC 회장. 사진/뉴시스
철수해도 문제…아시아나, 어디로
인수 시점은 미뤘지만 HDC현산은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HDC현산이 정부의 지원을 더 받기 위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관측도 나온다. 인수를 포기하면 이행보증금으로 낸 2500억원을 날리기 때문에 쉽게 철수하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문제는 HDC현산이 인수를 포기하면 아시아나항공 새 주인을 찾는 게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이 커 웬만한 대기업이 아닌 이상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앞서 아시아나항공이 매물로 나왔을 때 SK, 한화, CJ 등이 인수 후보로 거론됐지만 대기업은 한 곳도 나서지 않았다.
여기에 코로나19로 급감한 여객 수요가 2022년에야 지난해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면서 새 인수자 찾기에는 난기류가 가득할 것으로 보인다.
경영난에 시달리다 최근 국영화된 알리탈리아항공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알리탈리아항공은 201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 매각에 나섰는데 코로나19로 새 주인을 찾지 못하면서 국영화됐다.
국내 2위 항공사를 버리면 향후 국가 재난 등 비상상황에 우리 국민을 수송하는 게 어려워지기 때문에 다른 부실기업처럼 해체까지는 가지 않을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파올라 데 미켈리 이탈리아 교통부 장관은 "코로나19로 해외에 체류하던 이탈리아인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우리 모두 목격했다"며 "이에 따라 국영화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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