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정부의 제2 벤처투자붐 조성 정책이 금산분리 원칙과 충돌하며 논란을 낳는다. 정부는 대기업 지주회사의 벤처캐피탈 허용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에 시민단체 등은 경제민주화 정책 공약의 금산분리 원칙과 어긋난다며 비판한다. 이미 지주회사로 전환해 금융 계열사를 처분한 대기업 집단은 비지주 집단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1일 정부 및 재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대기업 지주회사의 벤처캐피탈 제한적 보유 허용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대기업 지주회사가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을 보유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는 내용이다. 지주회사는 금융회사를 보유할 수 없도록 금산분리 규제가 적용되고 있으나 이를 풀어 대기업이 벤처 분야에 투자하도록 유도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막혀 자동폐기 되는 등 재벌개혁 공약 진도가 부진하자 문재인정부가 친기업 정책으로 후퇴한다는 말도 나온다.
앞서 20대 국회에서 금융, 보험사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나 보험사의 자산운용비율 산정 시 시가로 책정하는 보험업법 개정안 등의 파장은 상당했다. 보험업법 개정안의 경우 사실상 삼성생명을 타깃으로 해 삼성전자 순환출자 해소 및 공개 추진하다 실패한 지주회사 전환 등을 유도했었다.
하지만 법안들이 자동폐기돼 결과적으로 자발적 지주전환한 집단만 손해를 본 셈이다. 롯데그룹과 SK그룹 등은 지주회사체제 전환 후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알짜형 금융 계열사들을 매각했다. 반대로 삼성이나 한화 등 비지주 집단은 여전히 금융 계열사를 보유 중이다. 롯데나 SK 등은 그나마 벤처캐피탈을 통해 금융분야에 재진출할 수도 있겠지만 금산분리에 대한 일관성 없는 정책기조로 인해 지주집단과 비지주집단 간의 형평성 문제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 가운데 정부가 21대 국회들어 기업주도형 CVC 전환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 방침부터 발표하자 아예 경제민주화 정책이 뒷전에 밀리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로 경기부양책이 우선시 되는 분위기와 맞물려서다.
최근 경실련은 재벌 지주회사가 벤처캐피탈을 소유하도록 하는 금산분리 훼손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며 성명도 냈다. "CVC는 엄연한 금융업의 일종으로 금산분리 규제 적용 대상이며, 만약 CVC를 비금융회사로 인정한다면 금융지주회사들이 이미 설립한 벤처캐피탈은 비금융회사가 돼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매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 문제를 피하기 위해 CVC를 공정거래법상 비금융회사로, 금융지주회사법상 금융회사로 인정한다면 법체계를 흔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실련은 이어 “기업주도형 CVC는 친재벌정책”이라며 벤처기업의 차등의결권 도입과 결합할 경우 재벌 3세와 4세 후계 경영인이 벤처회사를 설립해 캐피탈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등 새로운 유형의 일감몰아주기가 등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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