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누구나 가장 찬란한 시기가 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뒤를 돌아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화려했던 때가 서서히 저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허나, 누구도 그 경계선을 알지 못한다. 다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이 그 경계선을 넘고 있음을 느낄 뿐이다. 최근 삼청동 카페 보드레 안다미로에서 만난 배우 김호정은 이러한 경계선이 딱 자신이란다.
김호정은 영화 ‘프랑스 여자’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자신과 작품을 하고 싶어 했던 김희정 감독이 개인 번호로 직접 연락을 해왔다고 감독과의 첫 만남부터 설명했다. 그는 김 감독이 건넨 ‘프랑스 여자’ 시나리오를 보고 ‘내 이야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는 “너무나 공감이 돼 단번에 하겠다”고 했다.
‘프랑스 여자’는 한때 배우를 꿈꿨지만 파리 유학 후 프랑스인 남편과 정착한 미라(김호정 분)가 이별의 아픔을 겪고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 20년 전 공연 예술 아카데미에서 함께 공부했던 옛 친구들과 재회하면서 겪게 되는 특별한 여행을 다루고 있다. 김호정은 영화에 대해 “어떻게 보면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며 “하지만 나는 실제로 20대 때 연극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연극 배우가 되기 위해 미치도록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프랑스여자' 김호정.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김호정이 단순히 연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영화라 공감을 했던 건 아니다. 극 중 미라가 처한 상황이 마치 자신과 닮아 있는 구석을 발견했던 것이다. 미라는 프랑스에 사는 동양인, 한국에 왔지만 프랑스 국적을 가진 자이기에 프랑스에도 한국에도 속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미라가 김호정은 자신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받을 당시 영화를 하면서도 막 브라운관으로 넘어온 지 2년이 됐을 시기”라고 했다.
김호정의 드라마 도전은 연극, 영화를 통해 1999년부터 여러 작품을 해왔음에도 처음으로 어떤 배우가 되야 할지 고민을 하게 만든 계기였다. 김호정은 “TV로 넘어오면서 여성성이 강조된 인물보다는 누구의 엄마 역할을 주로 맡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배우가 되야 할지를 고민하던 시기”라고 했다. 그는 “어느 순간 배우가 확 아줌마 역할로 돌아선다”고 했다. 그러한 경계선에 선 여배우들이 하나 같이 힘들어한다고도 했다.
더구나 김호정은 아직 싱글이다. 그럼에도 드라마에서 주어지는 역할이 엄마 역할이 대부분. 김호정은 자신이 싱글 임을 강조하면서 “아직 엄마가 아니다. 그래서 어려운 거다”고 했다. 남들이 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기 스스로는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누군가의 엄마라는 모습을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지 갈등 속에서 작품을 만나야만 한단다.
때로는 이러한 경계에 선 처지 때문에 김호정은 스스로에게 냉정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프랑스 여자’에서 미라가 거울을 보는 장면이 자주 등장을 한다. 특히 거울은 영화에서 미라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거나, 혹은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장면에 대해 설명을 하던 김호정은 대뜸 “요즘 거울을 보면 되게 추하다”고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러다 보니 김호정은 현재가 아닌 과거 찬란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활동적이고 자유스러웠던 시기인 30대 후반 자신의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사진을 찍어도 그러한 모습이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프랑스여자' 김호정.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화려한 젊은 시기가 지나고 어느 순간 초라해진 자신을 발견한 이들은 과거에 갇히기 마련이다. 미라는 과거 꿈을 위해 자신을 좋아하는 영민, 그로 인해 상처 받은 영민의 여자친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유학 길에 오른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흐른 뒤 남편과 이혼을 하면서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에 한국으로 돌아와 영은(김지영 분)과 성우(김영민 분)에게 끊임없이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거나 되물으며 자신이 여전히 건재함을 확인 받고 싶어한다.
이러한 미라의 모습에 대해 김호정은 인생이 그렇단다. 그는 “나 자신도 과거 꿈을 따라 열심히 산다고 누군가 나를 좋아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때가 있다”고 했다. 또한 “우리 모두가 열심히 살아왔는데 돌이켜 보면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는 “꿈을 위해 열심히 산다고 성공하지 않는다. 성공을 한들 행복할까. 성공과 행복은 별개의 문제다”고 했다.
김호정은 “인생은 늘 경계에서 산다”고 했다. 현재 전세계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 임을 언급하며 “괜찮은 건가. 아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무엇 하나 확실한 건 무엇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호정은 “영화가 개봉하는데 많이 봐달라고 이야기하기에도 애매하다”며 “지금 상황 자체가 그러한 경계라고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 하다”고 했다. 그는 “미라를 연기하고 나니 어느 정도 경계에 서 있는 내가 느낀 불안함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떨쳐버릴 수 있었다”고 했다. 모든 것을 쏟아내니 새롭게 출발할 힘이 생겼단다.
과거 김호정은 영화 ‘화장’을 통해서 사적인 상처를 넘어설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프랑스 여자’를 통해 김호정은 “내가 가진 문제들을 보여주는 거다. 치유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경계에 있을 것이란다.
“구체적인 소원이 있어서 성공을 했다고 한다면 또 이런 것이 있을 거에요. 내가 성공을 위해서 희생 시킨 것이 무엇인지, 가족이나 자유 이런 것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배우를 떠나서 누구나 죽을 때까지 이걸 생각하면서 살지 않겠어요.”
'프랑스여자' 김호정.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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