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기온이 상승하면서 벌들의 활동이 왕성해지고 있다. 사람들의 야외 활동이 늘어나는 7월 말~9월 중순은 벌 쏘임 사고가 급증하는 기간이다. 실제로 소방청에 따르면 2017∼2019년 벌 쏘임 사고로 119구급대가 이송한 환자 총 1만6751명 중 76%인 1만2483명이 7∼9월 발생했다.
벌에 쏘이면 해당 부위만 붓고 아픈 경우도 있지만 심한 경우에는 몸 전체에 두드러기가 일어나고, 혈관부종이 생기거나 얼굴이 붉어진다. 사람에 따라 위경련이나 자궁수축, 설사가 일어날 수도 있고 만약 인두·후두 혹은 기도 윗쪽이 심하게 부으면서 쇼크가 일어나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벌에 쏘였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의 편차가 큰 이유를 벌독이 지닌 독성의 강도에 따른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인체의 면역 체계와 알레르기 반응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몸에는 외부에서 침입한 항원을 인식하는 '비만세포'가 있다. 비만세포는 항원을 인식하면 백혈구 등 항원과 싸울 수 있는 세포들을 불러들이는 '히스타민(Histamine)'을 분비한다. 히스타민은 혈관을 확장 시켜 혈류량을 늘리고 상처 부위에 부종과 통증,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만약 벌독에 민감한 사람 즉, 벌독 알레르기 환자가 벌에 쏘일 경우 과다한 히스타민 분비로 혈액이 지나치게 빠져나와 혈압이 떨어지고 몸이 붓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이 부작용이 심해지고 적절한 응급조치가 없을 경우 쇼크사까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반적인 반응보다 과도한 알레르기 반응을 '아나필락시스 반응(Anaphylaxis reactions)'이라고 한다.
벌독 알레르기는 대표적인 곤충 알레르기로, 벌에 쏘였을 때 나타나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컫는다. 벌의 종류는 전세계적으로 12만종에 달하지만 이중 꿀벌과와 말벌과에 속하는 벌들이 주로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벌독 알레르기 여부를 확인하려면 가까운 내과나 가정의학과를 방문해 관련 검사를 받으면 되는데, 대표적인 검사로 '이뮤노캡 벌독 알레르기 검사'가 있다. 벌독 알레르기 환자들은 꿀벌, 말벌, 땅벌 등 특정 종류의 벌독에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는데 벌독 항원 검사를 통해 벌독 알레르기 유무는 물론, 어떤 종류의 벌독에 알레르기가 있는지도 확인 가능하다.
다만 벌독 알레르기 환자의 50%는 꿀벌독과 말벌독에 '동시 양성'을 보이는데, 이는 특정 항원에 의해 만들어진 항체가 그 항원과 성질이 비슷한 물질에 대해 반응하는 교차 반응일 수도 있다. 해당 경우 추가적인 벌독 성분항원 검사를 통해 동시 양성과 교차 반응을 구분해 정확한 원인 벌독을 확인할 수 있다.
벌독 알레르기 환자의 경우 벌에 쏘이는 것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벌이 많은 지역의 방문을 가급적 삼가고, 등산이나 벌초 등을 갈 때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벌을 자극하는 향수, 화장품, 스프레이 사용을 자제하고, 벌이 있는 곳에서 뛰거나 빨리 움직여서 벌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또 집 주위에 벌집이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제거할 것을 권장한다.
벌독 알레르기 응급치료법은 심장박동과 호흡 수를 늘리는 에피네프린을 허벅지에 주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구급차에서 응급구조사가 에피네프린을 투여하는 건 불법이다. 때문에 벌이 걱정되는 장소를 가야할 경우 사전에 병원에서 에피네프린 주사나 항히스타민제 등 비상 응급약을 미리 처방받아 소지하는 것이 안전하다.
권애린 GC녹십자의료재단 전문의는 "벌에 쏘인 후에 알레르기 증상을 경험했던 환자들은 다시 한 번 벌에 쏘였을 때 아나필락시스를 경험하게 될 확률이 75%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라며 "벌독 알레르기가 의심된다면 의료기관 검사를 통해 정확히 진단한 뒤, 주의를 기울여 벌 쏘임 사고를 예방하고 필요한 경우 면역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했다.
7월 말~9월 중순에 발생하는 벌 쏘임 사고는 연간 전체 사고 중 76%를 차지할 만큼 빈번히 발생하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사진/GC녹십자의료재단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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