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LG 디스플레이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에서 일하다가 폐암으로 숨진 30대 근로자가 7년여만에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21일 반도체 노동자 인권단체 '반올림'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1일 노동자 A씨 유족이 산재 불승인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반도체/LCD 포토공정에서는 전리방사선, 벤젠, 니켈, 포름알데히드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고 현재 과학수준에서 업무관련성을 판단하기에 불확실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첨단산업 유해물질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규명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여러 물질이 영업비밀로 성분이 알려져 있지 않는 것 고려하면 망인과 업무상 인과관계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망인이 일한 근무환경은 비정상적 상황에 따라 유해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클린룸 환기시스템으로 인해 다른 공정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에도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과거 작업환경측정 자료는 당시 상황을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어 그것만으로 노출수준이 낮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망인의 나이는 호발연령에 비해 이른 나이인 38세에 발병한 점, 기존질환이나 가족력이 없는 점, 16년 정도의 흡연력 있으나 재해자의 폐암은 선암이며 매우 급격하게 진행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업무상 유해요인이 흡연과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A씨는 2000년 12월 노광기 장비업체에 입사해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공장에서 4.5년, LG 디스플레이 LCD 파주공장에서 7년간 근무하다가 만 38세이던 2012년 6월 폐암에 걸려 이듬해인 2013년 6월 사망했다. A씨가 맡은 업무는 반도체나 TFT LCD 등 회로 공정이 필요한 제조라인에서 카메라와 같이 포토마스크에 빛을 쪼여 반도체 웨이퍼나 TFT LCD 유리기판에 회로를 그려주는 업무였다.
유족은 2014년 2월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재해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공단은 "과학적으로 엄격한 인과 관계를 증명할 증거가 없다"며 거부했다. 이에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반올림 측은 이날 "현재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재해판정은 의학적·과학적으로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명목으로 재해자 질병의 업무관련성을 너무 쉽게 배제하고 있다"면서 "결국 피해자와 유족들은 사회적 안전망에서 부당하게 배제될 수 있으며, 사업장 내 잠재적인 위험성은 쉽게 간과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판결로 근로복지공단은 더욱 법원 판결 취지를 반영하는 판정을 해야 하고, 정부와 국회는 산재판정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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