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경제단체들이 계엄 후폭풍과 탄핵 정국임에도 일체의 논평이나 성명 등을 내지 않고 관망모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탄핵의 주된 요인은 다르지만, 과거 박근혜정부 탄핵 당시 정경유착의 채널이 됐던 한국경제인협회(옛 전경련)가 공중분해 위기에 처했던 점을 감안하면 신중한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는 계엄과 이후 사태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탄핵 정국으로 반도체특별법 법안이나 상법 개정안 논의 등 재계의 관심 이슈가 처리되지 않는 상황임에도 행보에 신중한 분위기 입니다.
대한상공회의소.(사진=연합뉴스)
경제단체들은 현재로서는 성명이나 논평을 낼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과거 한경협의 박근혜정부 탄핵 경험에 따른 영향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정치·경제적 파장이 걷잡을 수없이 커지는 만큼 섣불리 상황을 논평하기 보다는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기류가 강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박근혜정부 때도 탄핵이 헌재에서 인용됐을 때 경제단체들의 성명이 나왔다"며 "만약 성명을 낸다면 탄핵 사태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된 다음에 낼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현재로선 입장이나 성명, 코멘트를 낼 계획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도 "경제단체에서 박근혜정부 탄핵 당시에 성명을 냈던 건 헌재에서 인용됐을 때다. 이번에도 헌재 정도 갔을 때 성명이 나오지 않겠느냐"면서 "과거 탄핵 때는 각 단체에서 입장이나 성명이 중구난방식으로 나왔는데, 이제는 경제 4단체들이 같이 입장을 맞추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이러한 판단의 기저에는 경제단체가 정치 리스크에 휘둘려 단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필요가 없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정치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진영 간 찬반이 뚜렷한 상속세 개정안 논의 등을 꺼냈다가 도리어 역풍을 맞을 위험성이 상존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경제단체들은 정치적 사안과는 별개로 정책협의회 개최를 통해 경제정책 단체로서의 행보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인플레이션감축법(IRA)·반도체법(칩스법) 개정 가능성 등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을 염두에 둔 조치입니다. 대내적으로는 탄핵 정국으로 고환율과 민생경제 위기 등 한국 경제가 엄중한 상황인 점을 감안해 경제정책 자문과 아젠다 발굴 등 경제단체 본연의 역할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됩니다.
경제단체 맏형격인 대한상의는 이번 주 경제 상황과 중소기업 대응방향을 주제로 한 '제95차 중소기업위원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이날 하반기 기업환경정책협의회를 열었습니다. 무협도 같은 날 2025 세계경제통상 전망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이날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긴급 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손 회장은 "최근 커지고 있는 정치적 불확실성은 기업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고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어 우려스럽다"며 "업종별로도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등 많은 업종들이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중국의 추격 등으로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손 회장은 "지금은 대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 모두가 어려운 가운데 특히 많은 소상공인들이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라며 "올해 우리 경제는 소비 침체가 연중 지속되고, 주요국 수요 부진 같은 대외 리스크 확대로 최근 수출까지 증가세가 둔화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우리 사회에 불안감이 더 확산되지 않고,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투자와 경영 활동에 임할 수 있도록 국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해 주길 바란다"며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는 상법 개정이나 법정 정년 연장 같은 사안들은 보다 신중하게 검토해 주시고, 반도체 같은 첨단전략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보조금 지원, 근로시간 규제 완화 같은 입법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습니다.
앞서 류진 회장을 필두로 한 한경협은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상공회의소에서 제35차 한미재계회의 총회를 개최했습니다. 미국 대선이 끝난 지 한 달여 만에 개최되는 가운데 5년 만에 미국에서 열린 총회였습니다.
김봉만 한경협 국제본부장은 이번 한미재계회의에 대해 "한미 FTA가 향후에도 양국 경제와 통상협력의 정책 기준 돼야 하고, 교역·투자 관련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돼야 한다는 것에 양국 경제계가 동의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단체 긴급 간담회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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