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해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실제 ‘교섭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법률)이 17일 시행 100일을 맞습니다. 법 시행 전부터 경영계가 우려했던 파업과 같은 극단적 노사 충돌 상황은 빚어지지 않은 가운데, 1000건이 넘는 하청 노동자들의 교섭 요구가 분출하면서 노사 관계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특히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판단이 잇따르며 원청의 교섭 책임 범위가 확대되고 있지만, 실제 교섭이 이뤄진 건 한 자릿수에 그쳐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난 3월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참가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16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법이 시행된 지난 3월10일부터 이달 5일까지 하청노조 1137곳(조합원 16만1830명)이 원청 사업장 431곳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한 원청은 56곳(5월말 기준)에 그쳤고, 이 중 6곳만 실 교섭에 들어갔습니다. 실제 노란봉투법 시행 시 ‘쪼개기 교섭’이 만연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교섭 테이블에 앉지도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에 반해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사례는 늘고 있습니다. 노란봉투법 시행 100일 동안 사용자성의 판단을 구하기 위해 지방노동위원회에 접수된 사건은 80건입니다. 지노위는 이 중 69건(약 86%)에 대해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했습니다. 산업안전과 작업환경 등 여러 의제 중 한가지만이라도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원청을 ‘진짜 사장’이라고 보고 교섭권을 부여한 것입니다.
“트로이 목마” 재계 의제 확대 경계
그럼에도 실제 교섭 진행이 지지부진한 배경으로는 교섭 절차 지연이 꼽힙니다. 지노위에서 사용자성을 인정 받더라도 원청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상당수 원청은 재심 결과 이후에도 법원 판단까지 받아 보겠다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교섭 절차는 앞으로도 더욱 지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전날 한화오션은 급식업체 하청 노조인 웰리브지회 소속 노동자들을 사용자로 인정한 중노위의 판단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재계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사용자성 인정 사례가 늘어나면서 교섭 의제 확대에 따른 기업 부담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사용자성이 인정된 산업안전과 작업환경 등을 의제로 교섭을 시작하더라도, 실제 교섭 테이블에서는 이와 별개인 임금 등의 노동조건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노란봉투법 취지에 맞게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의제에 대해서는 교섭을 할 수 있지만, 실제 협상 과정에서 임금과 같은 근로조건에 대한 책임 소지로 의제가 확대될 수 있어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며 “마치 트로이의 목마처럼 숨겨진 병사들이 뛰쳐나와 성을 무력화하는 것처럼, 임금 등 근로조건과 관련된 의제가 경영권을 와해하고 형해화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서울 도심에 입주한 기업들의 모습. (사진=뉴시스)
반면, 노동계는 이 같은 원청의 방침에 강하게 불만을 표하고 있습니다. 임금과 같은 근로조건에 대한 의제도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이 존재할 경우 교섭이 진행될 수 있는 데도 경영계가 모호하다는 이유로 교섭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노조법을 개정한 핵심적인 이유는 노동시장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하청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것으로 임금을 교섭 의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지금 초과 세수 등 이야기가 나올 만큼 호황인 상황인데 하청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대해 교섭 절차를 지연하는 등 기업들이 철벽을 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노동계는 다음달 15일로 예정된 ‘총파업’에서 노란봉투법 교섭 절차 개선과 원·하청 교섭 확대를 핵심 의제로 투쟁을 확대한다는 방침입니다.
“기업들이 철벽” 노동계 강력 반발
이처럼 원·하청 교섭 갈등이 본격화하고 있는 만큼, 향후 법적 분쟁 등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직까지는 노란봉투법 시행 초기인 탓에 서로 추이를 살피는 분위기가 강했다”면서 “사용자성의 인정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만큼 향후 법적 분쟁부터 노사 갈등이 좀 더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노사 갈등 상황은 임단협과 맞물려 7월 중에 증폭 효과를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1월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원청교섭 쟁취!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 2026년 민주노총 신년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면, 이러한 노사 갈등은 새로운 정책에 따른 ‘진통’으로 향후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옵니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장은 “노란봉투법 정착 과정에서 진통이 이어질 것이란 예상은 했는데, 소송으로 까지 노사 갈등이 번지는 사태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100일이란 시간 동안 노란봉투법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기 때문에, 이제 재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불복하고 지연하는 사측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와 함께 노란봉투법의 개정 취지에 맞게 정부가 현장 가이드라인을 재정비하는 등 행정 개입을 보다 명료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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