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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생과 취준
오늘 부는 바람은
2015-01-08 17:51:56 2015-01-08 17:51:56
오전 여섯 시 반에 일어나 씻고 나갈 준비를 하면 일곱 시 반이다. 집 바로 앞에 맛있는 빵집이 있지만, 아홉시, 빨라도 여덟시 반에 가게 문을 열기 때문에 요즘은 빵을 사먹을 일도 잘 없다. 편의점에서 커피 한 잔 사들고 학교 열람실에 도착하면 여덟시다.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을 읽고, 신문 요약을 꼼꼼히 끝내고 나면 어느새 열시다. 한 시간 정도 포탈에 뜬 인터넷 뉴스들을 훑어보고 나면 알바를 갈 시간, 세시에 퇴근하고 나면 다시 열람실에 가서 그날의 이슈 중 한 가지에 관해 지속가능 ‘바람’ 웹진에 실을 에세이를 작성한다.
 
요즘은 에세이 대신 자기소개서를 쓰는 시간이 많다. 동계 인턴을 뽑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신입생들이 술을 먹고 연인들이 산책을 하는 학교의 명물 중앙광장 푸른 잔디밭 아래에서, 한때는 신입생이었던 나도 퀴퀴한 열람실 구석에 박혀 자소서를 쓰는 영락없는 ‘취준생’이 됐다. 주위를 흘긋 둘러보면 이따금 한숨 푹푹 내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로 미루어 보아 소개할 것도 없는 스스로를 열심히 소개하는, 이른바 ‘자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이 나 뿐은 아닌 것 같아 조금 위로가 된다.
 
자취생이지만 열람실에서 집에 들르는 일이 어지간히 귀찮아서 요즘은 밥도 늘 밖에서 대충 때우는 식이다. 매주 목요일에는 가산으로 회의를 가고, 매주 금요일에는 PD, 기자를 준비하는 언니 오빠들과 논술 및 작문 스터디를 한다. 스터디가 끝나면 보통 낮술이다. 별로 즐겁지는 않지만, 다들 왠지 위로를 받고 돌아오는 소소한 자리다. 그래도 가장 큰 위안인 남자친구와도 요즘은 거의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큰 백팩을 매고 만난다. 데이트라 해봤자 일주일에 한두 번 맥주 한 잔, 영화 한 편이 다다. 항상 여기저기 놀러만 다니던 스무살의 연애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주변 친구들 커플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4학년이니까, 졸업했으니까.
 
 
비정규직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이제 심지어 비정규직 채용을 위한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라는, 그야말로 해괴망측한 논리가 윗사람들에게서 나오고 있는 요즘 이 시대에, 공부할 거리를 잔뜩 손에 들고도 불안한 게 비단 나 혼자는 아닐 것이다. 휴학(休學)이란 ‘공부를 쉰다’는 의미 아니었던가. 언제 그 의미가 바뀐걸까. 어째 공부를 쉬어야 할 휴학생이 더 조급한 마음으로 한시도 글을 눈에서 떼지 못하고 앉아있다. 얼마 전 만난 CPA 시험을 준비하는 휴학생 친구는, 어떤 선배가 술자리에서 저에게 “너는 정말 ‘휴’학했구나”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뜨끔했다고 했다. 말이 곧이 곧대로가 아니니, 참 우습고도 슬픈 일이다. 
 
일단 닥치는 대로 자기소개서부터 쓰고는 있지만, 어느 한 곳도 인턴 모집요강에 급여를 명시해 놓은 곳이 없는 것은 순간순간 나를 김빠지게 만든다. 2달간의 짧은 인턴십이라지만, 하루하루가 조급한 취업준비생들에게 분명 최저임금도 안 될 급여로 자리를 열어 둔 회사들이 좀 너무했다 싶다. 그래도 당장 나한테 필요한 건 스펙이자 경험이니, 어쩔 수 없이 또 자소서 작성에 고개를 파묻는다.
 
지난 24일, 단일후보로 이루어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선거가 본투표와 연장투표 도합 최종 투표율 46.9%로 개표 기준인 50%를 넘기지 못해 무산됐다. 서울대 외에 경희대와 중앙대, 한양대 등 다수 대학에서도 단일 후보로 ‘쓸쓸한’ 총학 선거를 치렀다. 한국외대는 2012년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입후보자가 나오지 않아 선거가 무산됐다. 투표소는 휑한데, 학교 열람실은 자리가 없을 지경으로 붐빈다. 다들 참 바쁘다.
 
열람실에서 공부가 끝나면 집에 오는 길이 제법 추워졌다. 다음 주부터는 다시 영하의 추위가 찾아온다고 했다. 옷을 여며도 어째 작년보다, 재작년보다 속이 시리다. 요 며칠 속이 답답해서 편의점에 들러 소화제를 사서 집에 와 두 알 삼키고 잠든다. 아침에 일어나 봐도 여전히 속은 더부룩하다. 그래도 또 살겠다고, 꾸역꾸역 뭐가 들어갔는지도 모를 바깥 밥을 식도로 밀어 넣는 내가 웃기다. 언제쯤 속 편히 밥술을 뜰 지가 궁금하다. 이번 달에 받은 토익 성적 유효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취직하고 싶다. 속이 또 답답해지는 걸 보니, 아무래도 열람실에 가는 길에 소화제를 좀 더 사야 할 것 같다.
 
 
성지원 기자 www.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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