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샤이 반기문'은 있는가
입력 : 2017-01-15 15:07:03 수정 : 2017-01-15 15:07:03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유력 대선 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귀국으로 떠들썩하다. 공항은 지지자들과 환영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말 그대로 북새통이었다. 국내 들어온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반 전 총장은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공항철도를 이용하고 식당에서 청년을 만나고 기자들과는 유엔에서의 육아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복지 시설인 ‘꽃동네’를 방문하고 AI조류인플루엔자 방역 현장까지 찾기도 했다. 흡사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해야 할 행보의 모습처럼 비쳐지는 반 전 총장의 일정이다. 눈에 띄는 순간은 학교를 다닌 충주에서의 환영행사였다. 체육관을 꽉 메운 고향사람들에게 ‘충주의 아들’이란 매우 정치적인 발언을 했다. 대선 출마 선언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아직 귀국 효과가 지지율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나 홀로 질주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 전 총장은 태풍의 눈인가, 찻잔 속의 태풍인가.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이름난 전문가들 대부분은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낙승을 예상했었다. 각종 여론조사 지표에서 클린턴은 트럼프 후보를 멀찌감치 앞서 나갔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또한 클린턴에 더 우호적이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경합주(스윙 스테이트)에서 ‘마초맨’인 트럼프를 경계하는 유권자들의 움직임이 이곳저곳에서 포착되었다. 트럼프 관련 유세가 펼쳐지는 곳이면 어김없이 반대 대중 집회가 열리곤 했다. CNN을 비롯한 미디어들도 유세 현장이나 인터뷰에서 트럼프 후보의 막말 퍼레이드와 과거 한 녹화장에서의 여성에 대한 성희롱 추문을 보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클린턴의 당선을 의심할 수 없는 정황 증거가 쌓여가는 선거였다. 그러나 개표 당일 미국 국민을 포함한 전 세계인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토록 힘들어 보였던 트럼프 후보가 압승했기 때문이다.
 
이변이라기보다 선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선거란 가장 바람직한 후보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가장 강력하게 자신을 각인시킨 인물에게 당선을 선물하는 정치적 이벤트가 바로 선거다. 후보의 당선은 개인 역량, 조직 기반, 정책 능력에 달려 있다. 클린턴과 트럼프의 개인 능력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더 큰 격차가 있더라도 유권자들로서는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 사람이 그 사람 같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도 그렇지만 한국 대선에서도 후보들 사이의 기량차를 가려내기는 매우 어렵다. 또 그 차이가 당락의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도 못한다. 지난 2012년의 대통령 선거 결과가 후보 간의 개인적 역량 차이였을까. 그래서 중요해지는 변수가 조직 기반이다.
 
조직 기반은 정치적 또는 이념적 기반을 의미한다. 정당지지율이 높거나 이념적으로 보수나 진보 또는 중도층의 절대적인 성원을 등에 업은 경우다. 트럼프 후보는 공화당 대선주자다. 일반 유권자들의 조사인 여론조사에는 잡히지 않지만 공화당은 미국 의회의 하원을 장악하고 있다. 하원의원 선거와 함께 치러진 미 대선에서 바닥 민심에 대한 공화당의 파괴력은 트럼프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더 중요한 변수는 여론조사에도 잡히지 않고 현장에서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던 ‘샤이 트럼프’ 유권자였다. 그들은 침묵하고 있었지만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에 열광했다. 숨죽어 지내던 백인 남성들을 향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구호는 당선의 일등 공신이었다. 이것이 정책 능력이다.
 
정치권의 흐름에 따르면 조기 대선이 점쳐진다. 출발선에서 가장 앞서 있는 후보는 문재인 전 대표다. 탄핵 상황으로 진보 진영이 결집하며 콘크리트 지지층을 만들어 냈고 중도 유권자들도 후보 선택에 진보 성향이 강화되었다. 반면에 보수 진영은 양 축이 모두 무너졌다. 박 대통령은 직무 정지로 유명무실해졌고 보수층은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으로 두 동강이 나버렸다. 보수유권자들은 어느새 유구무언 상태가 되어 버렸다. 입이 있어도 정국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처지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반 전 총장을 지지해줄 ‘샤이 반기문(반 전 총장을 지지할 의향은 있으나 밝히지 못하는 유권자)’은 있는가. 유권자의 30%가 넘는 보수층이 있고 보수 진영의 유력 대권주자가 없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유엔사무총장의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귀국 후 보여주는 행보가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더 서둘러 다른 후보를 찾으려 들지 모를 일이다. 정치적 미아가 되어버린 보수층에 ‘대통령감’으로 신뢰를 줄 때 ‘샤이 반기문’은 현실화된다. 다시 묻게 된다. 과연 ‘샤이 반기문’은 있는가. 해답과 결과는 반 전 총장에 달렸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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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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