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힘 서병수 의원은 지난 2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저를 포함해서 많은 국민들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잘못됐다고 믿고 있다"면서, "과연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될 만큼 위법한 짓을 저질렀는지, 사법처리 되어 징역형, 벌금, 추징금을 내야 할 정도로 범죄를 저질렀는지, 전직 대통령을 이렇게까지 괴롭히고 방치해도 되는 것인지, 보통의 상식을 가진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라며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경제 부총리에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석방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해 달라고 촉구했다.
서 의원의 발언을 접하고 순간 멍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부산시장을 거친 당내 최다선인 5선 의원의 입에서 탄핵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물론 주호영 당대표 권한대행은 서 의원 발언에 대해 "당 전체 의견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고 선을 그었지만, 국민의 힘 내부에 탄핵을 부정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게 되었다.
탄핵제도는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에 의한 헌법침해로부터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헌법에서 명문화한 제도다. 지난 2017년 최순실로 상징되는 비선실세가 대두되면서 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와 우리 사회가 커다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지만 헌법재판소가 헌법이 정한 절차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결정을 하여 헌정질서가 유지된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불과 4년도 되지 않아 국민의 대표 입에서 탄핵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헌법을 휴지조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보수의 가치는 법치주의를 준수하고 사법판단을 존중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여권이 대법원에서 확정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유죄판결을 뒤집으려고 시도했을 때 맹렬히 비판하고 나선 것이 국민의 힘 아니었나. 진정한 보수정당이라면 서의원에 대해 징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서의원의 발언은 국민의 힘이 정권을 잡으면 탄핵을 부정하려는 것 아닌가라는 시그널을 국민에게 안겨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탄핵을 부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4월 7일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 자리에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공개 건의한 것도 시기적으로 부적절했다.
왜냐하면 오시장이나 박시장이 선거에 출마하면서 전직대통령 사면을 공약으로 내건 기억이 없다. 유권자들로부터 사면에 대해 동의를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 힘은 보궐선거를 통해 4연패를 탈출했다. 그러나 대다수 유권자들은 국민의 힘이 잘해서 표를 준 것이 아니라 여권을 심판한 결과로 본다. 이는 당장 내년 3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에서 여권을 견제할 후보로 윤석열 총장이 유력하게 대두되지만 국민의 힘 후보들의 지지율은 5%도 넘지 않는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제1야당으로서 여권을 제대로 견제하고 코로나와 부동산으로 고통 받는 국민을 챙기라는 것이 유권자의 요청임이 분명함에도 난데없이 전직 대통령 사면을 들고 나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선거결과 50% 이상 국민이 지지하니까 탄핵 이전으로 회귀하고 싶은 속내를 들어 낸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사면은 공정하지도 않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선고된 것은 지난 1월이다. 말 그대로 이제 판결문 잉크가 마르고 있는 시점이다.
우리는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이른 사면으로 인해 오랜 기간 후유증을 앓은 바 있다.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 뇌물을 수수한 대통령은 법적으로는 물론 엄중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사회통합을 위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하더라도 ‘대통령 사면’은 그들을 대통령으로 뽑았던 국민이 결정하고, 정치권은 최소한 내년 대선까지는 더 이상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얘기를 꺼내지 않아야 한다. 적어도 수감 중인 전직 대통령을 배출한 국민의 힘은.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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