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양형의 가벼움)②월러는 징역 897년·조주빈은 42년…왜?
영미법계는 '엄벌주의'·대륙법계는 '교정주의'에 초점
미국 등 '엄벌주의' 국가는 모든 범죄 형 합산, 수백년 형 가능
한국 등 '교정주의' 국가는 중한 형 적용한 뒤 가중
국민 법감정에는 '엄벌주의' 맞지만 범죄예방 실효성 없어
2021-06-14 03:00:00 2021-06-14 07:11:45
[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해 1심에서 징역 45년형을 선고받은 조주빈 씨가 2심에서 42년형으로 감형됐다. 수형생활을 통한 교정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구미 3세 여아 살해' 혐의로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은 김모씨 양형 사유에도 교정 가능성이 포함됐다. 
 
#. 미국에서 15년간 9명의 여성을 연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로이 찰스 월러는 지난해 11월 900년에 가까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배심원단은 월러의 46개 혐의에 대해 유죄평결을 내리고 징역 897년형 의견을 판사에게 전했고 형은 그대로 선고됐다.
 
선진국 중 형사처벌이 엄한 국가 중 대표적인 곳이 미국이다. 한국과 미국 법원이 이처럼 큰 차이의 형량을 선고하는 배경엔 나라마다 적용하는 법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양형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주로 ‘교정’에 초점을 맞춘 대륙법 체계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 설명이다. 대륙법 체계는 일본을 통해 받아들였다. 한국과 일본 외에도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이 대륙법계에 속한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캐나다·호주 등은 영미법 체계를 갖췄다. 판례 위주 법체계인 영미법은 판례에 따라 법을 현실에 맞게 신속 적용해 나가며 판사 또는 배심원단의 권한과 재량이 크다.
 
한국도 해방 이후엔 미국과의 교류를 통해 영미법 체계를 일부 도입했다. 따라서 현재 한국 법체계는 영미법과 대륙법이 혼재돼 있다.
 
영미법 ‘병과주의’… 대륙법 ‘경합’

(왼쪽)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dl 지난해 3월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모습. 사진/뉴시스. (오른쪽) 지난해 12월 새크라멘토 고등법원에서 징역 897년형을 선고받은 미국 연쇄 성폭행범 로이 찰스 월러. 사진/미국 새크라멘토 경찰청.
 
영미법 체계는 양형시 수개의 죄를 합치는 ‘병과주의’ 방식으로 형을 부과한다. 각 범죄사실별 선고형을 정해 법률의 규정 또는 법관의 재량에 따라 각 선고형을 합산하거나 중복적으로 집행하는 식이다. 미국 법원이 피고인에게 인간의 수명 보다 많은 징역 수백년, 수천년 선고를 할 수 있는 이유다.
 
반면 한국·독일 등 대륙법 체계는 ‘경합범’ 형태로 피고인이 여러 죄를 저질렀더라도 가장 무거운 형량을 채택해 선고한다. 형법에 따라 형량을 가중하기도 하지만 영미법의 '병과주의'에 비해 형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피고인이 형량 최대 1년인 범죄 5건, 3년인 범죄 1건을 저지른 경우 미국에선 각 범죄 형량을 합산한 최대 8년을 선고할 수 있다. 한국 법원은 6건의 혐의 가운데 가장 중한 3년을 기준으로 그 절반까지 가중한다고 가정하면 4년 6개월 가량을 선고할 수 있다. 법체계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지는 셈이다.
 
특히 한국 법원은 범죄자 교화를 위한 ‘교정주의’에 초점을 맞춰 형을 선고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범죄자들이 재판부에 반성문을, 이해관계자 등이 탄원서를 제출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범죄자 응징에 초점을 둔 ‘엄벌주의’와 달리 ‘교정주의’는 범죄자가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교정·교화시켜 재범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범죄자 교정주의' 딜레마
 
다만 한국의 양형기준도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다. 2010년 형법이 개정되며 모든 범죄의 유기징역 상한선이 15년에서 30년이 됐고, 경합범으로 가중되면 45년, 누범으로 가중되면 최대 50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그럼에도 피고인에 대한 법원의 형량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여론과 범죄자 교정·교화가 실패에 그치는 사례가 많아지자 교정주의가 아닌 엄벌주의에 초점을 맞춰 형법체계를 영미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륙법 및 영미법 비교. 출처/뉴스토마토
 
그러나 전문가들은 엄벌주의나 형을 합치는 방식의 영미법체계가 범죄를 줄이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용시설의 물적·인적 인프라 확충이 어려운데다 영미법 체계가 범죄율 감소를 입증한 바 없기 때문이다.
 
강동욱 동국대 법무대학원장은 13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엄벌주의에 초점을 맞춘 병과주의 영미법은 사실상 상징적인 의미일 뿐, 실질적인 (범죄 감소) 효과는 없다”며 “혐의를 누적하는 개념인 영미법체계에선 빵을 여러 번 훔친 자와 살인자의 형이 같아지는 등 형평성 면에서 어긋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은 미국과 달리 사회적으로 범죄자 교정을 포기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며 “수용시설에 있는 범죄자 1인당 연 2000만~3000만원 가량의 비용이 드는데 이런 범죄자들 대부분을 수용시설에 가둬 오래두는 것이 비용 면에서도 상당히 고민되는 부분이고, 사회가 이들(범죄자들)을 교화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이들이 사회에 나와 또 다시 큰 범죄를 저질렀을 때 사회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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