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이날치 ‘범내려온다’를 입체적 춤으로 표현해 온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올해 초 세계적 밴드 콜드플레이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새 싱글 ‘하이어 파워(Higher Power)’에 어울릴 만한 춤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
올해 1월 초 화상 앱 줌으로 크리스 마틴(콜드플레이 보컬)과 멤버들이 얼굴을 내밀며 인사했다. 콜드플레이는 영국 출신 앰비언트 음악의 선구자인 브라이언 이노로부터 ‘이날치 범내려온다 온스테이지 영상을 소개받았다’고 했다. 이노는 콜드플레이 사운드의 대전환기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리얼악기 중심이던 콜드플레이는 이노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X&Y’, ‘Mylo Xlyoto’ 앨범을 기점으로 본격 전자음악 성향이 섞인 음악 스타일로 방향을 틀었다.
22일 오후 1시,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한 빌딩 지층의 연습실에서 만난 김보람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예술감독은 “실제로 브라이언 이노가 (콜드플레이 측에) ‘이날치 영상의 댄스 그루브를 봐라, 재밌지 않냐’ 해서 시작이 됐다. 마틴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단순히 자기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게 아니라, 당신들의 영상에 내가 출연하는 것이었음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해줬다”고 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사진/프로듀서그룹 도트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2007년 창단된 순수예술단체로 김보람 예술감독을 중심으로 현대무용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 이날치와 협업을 통해 대중적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올해는 콜드플레이와의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프랑스 투어가 취소됐던 올해 3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영상 스튜디오로 향했다. 김 감독은 “미국 안무팀과 앰비규어스 안무팀이 뒤섞여 현지에서 안무를 완성해냈다. 저녁에 맥주 한 잔 마시며 ‘이런 춤 어때?’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식으로 안무를 고안해냈다”고 했다.
“콜드플레이는 'Higher Power'가 퓨처리스틱한 콘셉트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나머지는 최대한 저희 측에 맡겨줬고요. 우리의 의상부터 시작해 움직임이 특이하다고, 다른 안무가들에게선 볼 수 없는 것이라 얘기해주더군요.”
지난 5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영국 ‘브릿어워즈’에 홀로그램 형태로 콜드플레이와 함께 무대에 올라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김 감독은 “콜드플레이 측에서는 ‘브릿어워즈’에 함께 출연하자고 제의를 했지만 고사했다. 이미 미국에서 긴 기간 자가 격리를 거치고 온 데다, 전업인 순수 예술을 우선시 해야겠다는 결정에 따른 것이었고 콜드플레이 역시 이를 존중해줬다. 향후 합동 공연에 대해 제안이 다시 오면 본업에 피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참여할 의향은 있다”고 했다.
6월10일 공개된 콜드플레이 ‘Higher Power’ 뮤직비디오에서도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홀로그램으로 등장했다.
영상에서 콜드플레이는 다채로운 색상으로 물든 쓰레기 행성 카오티카(Kaotica)를 탐험하며 카오티카 언어인 카오티칸(Kaotican)을 사용한다. 카오티칸은 ‘Higher Power’ 앨범 아트워크에도 사용된 독특한 문양의 언어다. 외계인으로 분장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단원들은 홀로그램으로 등장해 거리를 헤매던 크리스 마틴 주위를 에워싸고 퍼포먼스를 펼친다.
당시 해당 영상은 ISS(국제 우주 정거장)에 있는 ESA(European Space Agency) 우주 비행사 토마스 페스케(Thomas Pesquet)와의 화상 연결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돼 다시 한 번 반향을 일으켰다.
LA 촬영현장 스틸. 사진/ⓒMaria Alvarez & Ethan Newmyer
김 감독은 “매체와 결합하면서 이제는 춤도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춤은 이제 단순히 가수들을 빛내는 역할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면에서 리드하는 역할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최근 안무 전문가들 지휘 아래 움직이는 글로벌 로봇 개발 전문업체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춤추는 로봇도 사례로 들었다.
기계와 융합하며 진화하는 안무들은 그러나 다분히 인간적인 과정의 결실이다. 오전 11시부터 저녁 6~7시까지 하루 7~8시간씩 연습실에서 흘린 땀방울들이 모여 몸짓이 되고 이들 춤의 창조 원천이 된다.
“매일 매일 깨어있게 만들어주는 연습실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뭐 하고 싶지? 어떻게 움직이지?’ 하는 질문이 떠오르거든요. 답습하지 않는 노력이 중요하죠. 앰비규어스 춤은 정형화된 교육을 받고 온 무용수들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호흡일 수 있어요. 분명한 점은 우리 역시 자유롭기 위해 지키는 것들이 많다는 점이에요.”
김 감독은 이날치 ‘범내려온다’와 콜드플레이 ‘Higher Power’를 만들어내기까지 “발레 같은 기본기 위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일 뿐, 별다른 규칙은 없었다. 무용을 작업으로 생각했다면 두 협업은 편하게 놀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일을 한 것”이라면서도 “다만 어떤 춤을 추든지 자기한테 질문을 하고 확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확신과 영감은 연습실에서 나온다”고 했다.
특색 있는 공간을 활용하는 것도 이들이 주목받은 요인 중 하나다. 지난해 이날치와 협업한 ‘범 내려온다’의 한국관광공사 영상은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지를 돌며 찍어 화제가 됐다. 이날 공개된 콜드플레이 ‘하이어파워’ 댄스비디오 역시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며 촬영됐다. 서울 외진 골목길부터 시내 간판, 노래방, 횡단보도를 배경으로 춤을 추는 모습을 담았다.
“각 공간의 특이성 때문에 바뀌는 호흡과 춤의 미세한 변화가 있습니다. ‘범내려온다’ 영상 촬영 때 목포 풍경을 잊을 수 없어요... 새벽 5시에도 열심히 그물 던지는 어부들을 보며 하루 종일 이렇게 일하시는 분들도 있구나, 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20년 가까이 방송 백업 댄서부터 힙합 댄스, 현대무용까지 아울러 온 김 감독은 “최근 협업 결과에 흔들리지 않고 본업인 무용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뜻을 연신 밝혔다.
김보람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예술감독.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오는 11월 신작 ‘얼이 섞다’를 통해 관객을 만난다.
‘얼이 섞다’는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에 착안해 기획 중인 공연이다. 사라져가는 한국의 전통 소리를 춤, 몸짓을 엮어 ‘원시적 움직임으로의 소통’을 추적하며 춤의 가치, 의미를 찾는다.
“춤은 원시적인 언어에요. 말이라는 게 없을 때부터 소통의 도구로써 몸짓이 있었고 그것이 발전되면서 춤이 된 것이죠. 라디오에서 들려주던 우리의 아름다운 소리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게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춤도 그렇죠. 이미 우리 곁에 자연스럽게 있는데도 사라지는 것들. 나중에는 이 작업물을 테크노와 엮어 한국형 앰비규어스 클럽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앰비규어스가 꿈꾸는 춤의 가치, 지향점이 어떻게 되냐는 본보 기자 질문에 그는 “춤, 나아가 무용이라는 공연을 누구나 즐길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 목표”라 했다.
“무용이란 장르 자체는 어떻게 보면 재미없을 겁니다. 오히려 재밌게 봐선 안 되는 새로운 언어의 형태입니다. 이 비주류이자 기초 예술 장르가 조금 더 사람들에게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됐으면 합니다. 지금 저희도 현재 콜드플레이, 이날치와의 협업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지만, 결국은 춤에 대해 대중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는, 무용과 대중 예술간 간극을 줄 일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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