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 직원이 물어보지도 않고 일회용 플라스틱컵에 음료를 줬다. 다회용 컵을 사용하겠다고 의사를 밝히자 오히려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엔 매장 안에서 마실 땐 일회용 컵 사용을 말렸던 때가 있었다. 이 시국에 다회용 컵을 요구하는 고객이 별나 보이는 세상이 됐다.
매주 주간행사 같은 아파트 분리배출도 코로나 이후 업무강도가 세졌다. 외식이 줄고 각종 물품들을 온라인으로 사는 일이 늘면서 배달음식과 택배상자가 집을 찾는 횟수가 늘어났다. 맛있는 음식과 신성한 주문물품이야 환영하지만, 이들이 남기는 잔해물들까지 늘어나는 일은 썩 반갑지만은 않다.
우리집만의 일이 아닐테다. 어디 들어갈 때마다 손세정제 펌프질이 더이상 수고롭지 않다. 곳곳마다 소독약품을 뿌리고 서로가 안전한 안심업소임을 자랑스럽게 알린다. 하루 쓰고 버리는, 잘 썩지도 않는다는 마스크를 매일 갈아야 한다. 타인의 손길이 닿은 물품을 만질 때는 비닐장갑을 끼는 걸 권유하는 일상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2000명을 넘어선 지금, 우리는 환경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런 건 좀 우리가 살고 나서 여유가 있을 때 할 얘기로 취급받는다. 당장 화학약품으로 만든 손세정제를 써야 하고 잘 썩지 않는 비닐장갑이나 플라스틱 컵을 사용해야 우리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그렇게 우리를 지키는 사이에도 빠른 속도로 지구의 병환은 깊어지는데 말이다.
지구가 아픈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냥 아픈 것도 아니고 많이 아프다. 자꾸 지구가 아프다니 지병 정도로 여길 수 있지만, 중증이나 다름없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는 속도는 우리 계산을 뛰어넘었다. 빙하의 표면이 녹으면 그 속살은 더 녹는 속도가 빨라진다. 우리한테 먼 바다의 일이라지만 이미 칠레, 노르웨이 등에선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현실이다.
북태평양엔 플라스틱 쓰레기섬이란 곳이 있다.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이 곳에는 우리가 무심코 바다에 버린 해양쓰레기가 조류에 모여 한반도 7배나 되는 섬을 이룬다. 2018년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이 찾았을 때에는 무려 한글이 적힌 쓰레기가 대거 발견됐다. 전체 면적으로 환산하면 40만개에 달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 쓰레기가 태평양을 떠돌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환경을 필연적으로 파괴힌다. 서울 마포구의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이 자리잡은 곳은 과거의 쓰레기산이었다. 수도권에서 나온 온갖 쓰레기가 모였고 높이 100m에 육박했다. 난지도가 용량을 다하자 1990년대 인천에 수도권매립지를 만들었고 지금은 그마저도 가득 찬 상황이다. 하루에도 쓰레기를 실은 트럭 수백·수천대가 하나라도 더 욱여넣을 기세로 인천으로 향한다.
우리가 코로나 방역을 하면서 알게 된 건 이 지구가 하나로 연결됐다는 점이다. 한국만 방역 잘한다고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확진자 0명을 기록하며 코로나 종식을 선언했던 다수의 국가들이 다시 확진자가 급증했다. 지금 우리가 백신을 잘 맞아도 현재 접종률이 낮은 국가들까지 완료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다.
결국, 환경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원전 침출수가 당장 우리 바다에 안 들어온다고 안심하고 박수칠 일이 아니다. 지금의 우리가 사용한 플라스틱 컵, 일회용 마스크, 소독약품, 비닐장갑은 머지않아 우리에게 부담이 될테다. 환경은 여유있을 때 찾는 기호식품이 아니라 실제 생존과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방역도 친환경 방역이 가능할까. 뉴딜도 그냥 뉴딜이 아닌 그린뉴딜을 찾는 시대다. 어차피 코로나가 하루 아침에 없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당장의 방역도 중요하지만, 환경에 덜 부담을 주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미 우리는 너무 많이 만들고 너무 많이 소비한다. 환경이 이대로 파괴되는 걸 방조한다면 더이상 후손까지 찾지 않아도, 당장 우리가 위태로울 수 있다. 지금이 움직여야 할 때다.
박용준 공동체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진규 온라인뉴스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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