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의원직 사퇴를 전격 선언한 건 배수진이자, 마지막 남은 승부수의 의미가 짙다.
이 후보는 지난해만 해도 '어대낙'(어차피 당대표는 이낙연)으로 불리는 등 유력 대권주자로 꼽혔지만, 지난 4·5일 충청권 경선에서 28.19%를 득표하는 데 그쳐 1위 이재명 후보(54.72%)에 큰 차이로 뒤졌다. 때문에 반전의 계기가 절실했다는 게 캠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 후보는 8일 급히 민주당의 심장부인 광주를 찾았다. 그는 '호남권 공약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의 가치,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정권재창출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날에는 주말 충청권 선거 패배 이후 첫 공식행보에 나서며 네거티브 중단을 선언하는 등 전략을 수정했지만, 더 큰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결단을 내렸다는 게 캠프 측 설명이다. 캠프 정책총괄본부장인 홍익표 의원도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의원직 사퇴는 사실 시기만 보던 문제로, 오늘 직책을 사퇴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배수의 진을 치겠다라는 각오"라고 부연했다.
'자력으로 뒤집기 어렵다' 자체 분석
이 후보가 의원직 사퇴를 선언한 건 후보 본인과 캠프가 자력으로 뒤집기를 하긴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읽힌다. 충청권 참패를 딛고 오는 11일 대구·경북과 12일 강원권 경선, 그리고 64만명의 국민 선거인단의 투표 결과가 공개되는 1차 슈퍼위크에서 득표율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 목표로 잡은 결선투표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정치권에선 이 후보가 전남 출신에 전남도지사를 한 덕분에 25·26일 호남권 투표에서 높은 득표를 기대한다는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이낙연 캠프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지역 표심을 장악하는 속도가 만만치 않아서다. 호남권 의원 중 처음으로 이재명 지지를 선언한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5일 브리핑에서 "판세를 단적으로 보면 저희가 과반을 확보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낙연 캠프 역시 자력으로는 뒤집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우세해졌다. 복수의 캠프 관계자는 "최근 3~4년간 당원 투표 성향, '될 사람 밀어준다'라는 대세론에 대한 쏠림현상 등을 고려하면 이낙연 후보가 자력으로 뒤집기를 하긴 힘들다"라면서 "경선 중반 중요한 이벤트가 생기거나 중도 포기하는 후보들이 우리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해 준다면 희망을 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말 의원직 사퇴까지 해야 하느냐에 대해 후보가 정말 오래 고민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후보가 결단을 한 건 그만큼 간절했던 것"이라고 했다.
'어대낙'만 외치다가 경선 판세 오판
이 후보의 의원직 사퇴는 '어대낙' 심리와 '이재명 불가론'만 믿다가 판세를 오판한 결과로 보인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이 후보는 가장 높은 지지도를 자랑하며 유력 대권주자로 꼽혔다. 문재인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2년7개월을 재임하면서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고, 친문 의원들과 지지층의 지원도 등에 업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이재명 후보가 대법원으로부터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 판결을 받고 대선주자로서 본격적 행보에 돌입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특히 이재명 후보가 코로나19 정국에서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압수수색, 긴급방역 조치, 전국민 재난지원금 논의, 고위공직자 부동산 백지신탁 주장 등으로 선거 이슈를 주도한 반면 이낙연 후보는 '엄근진' 행보만 거듭, 역전을 허용했다. 오히려 '이명박·박근혜 사면론' 논란에 이어 4·7 재보궐선거에서도 패하며 지지율 상승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지난 7월 민주당 경선 초반만 하더라도 이낙연 후보는 이재명 후보를 추격하면서 '이낙연 현상', '양강론'에 불을 지피고 역전론에 힘을 싣기도 했으나 7월 중순 이후 '백제 발언'과 공약 이행률 논란, 국무총리-당대표 성과 논란 등이 제기되면서 지지율은 회복되지 않았다. 여기에 이재명 후보를 겨냥해 '이재명 리스크' 프레임의 검증 공세를 주도한 건 네거티브 공세로 보여지면서 역효과까지 낸 것으로 풀이된다.
8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광주시 서구 광주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국회의원직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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