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보규 기자]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공직선거법 개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림 투표용지'를 포함해 참정권 행사에 필요한 편의를 보장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선거 사무를 총괄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법 개정 필요성을 이유로 사실상 못 본 척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법 개정의 주도권이 있는 국회도 적극적이지는 않은 상황이다.
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등을 위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해 10월 각각 대표발의했는데 둘 다 계류 중이다.
두 의원은 모두 투표용지에 소속정당을 상징하는 마크나 심벌을 표시하고 후보자의 사진을 넣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글을 잘 읽지 못하거나 읽을 수 있더라도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발달장애인의 투표권을 강화하려는 취지다.
후보자의 사진이나 정당 로고 등이 들어간 투표용지를 사용하는 국가들은 이미 여럿 있다. 아일랜드는 투표용지에 사진을 넣고 영국과 미국·프랑스·스페인·아일랜드를 비롯한 10여개국은 정당 고로를 표시한다.
북아일랜드 투표용지 예. 출처=영국 법령데이터베이스
최 의원 개정안에는 정신적 장애 또는 노령으로 인해 혼자 기표소에 들어가서 기표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한 선거인이 가족, 본인이 지명한 2인 또는 공적 보조원을 동반해 기표를 보조할 수 있도록 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이 의원의 개정안에는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 작성과 함께 방송광고 시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사용하도록 하자는 내용도 들어있다.
모두 발달장애인의 바람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개정안 통과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태다.
김수원 한국피플퍼스트 활동가는 "(법안 발의가 됐지만)국회에서 논의가 되지 않아 당장 이번 대선에서는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요구에 관심이 있는 의원들이 아니라면 (개정안에)동의해주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피플퍼스트의 이해하기 쉬운 선거자료 제작 요구에 대한 정당들의 반응에서도 국회가 발달장애인 참정권에 큰 관심이 없음을 엿볼 수 있다. 피플퍼스트는 지난달 14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국민의당, 정의당을 방문해 관련 요청을 전달했고 이달 초 답변을 받았는데 민주당과 정의당만 이해하기 쉬운 선거자료를 만들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만들지 않겠다고 답변했고 국민의당은 응답이 없었다.
서울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지난 4일 열린 '장애인의 완전한 참정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에서 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대응팀 관계자가 예시로 만든 '그림 투표용지''를 들고 있는 모습.(사진=뉴스토마토)
선관위는 복지부동이다. 선관위는 최근 이 의원의 공직선거법 개정안 중 '이해하기 쉬운' 표현·문구와 관련해 실제 적용의 어려움, 예산지출 증가에 따른 재정 부담, 후보자의 선거운동 제약 가능성 등을 이유로 심도 있는 중장기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물론 일리가 있는 얘기들이다.
다만 발달장애인들이 지속적으로 이해하기 쉬운자료 제작 요구를 했음에도 선관위가 관련 연구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장기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앞으로도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비친다.
김 활동가는 "수년째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조치를 요구해왔고 선관위가 의지와 책임감을 가지고 나서면 얼마든 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선관위는 공직선거법이 바뀌지 않으면 못한다는 얘기만 계속해왔다"고 말했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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