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보규 기자] 발달장애인들이 후보자의 공약을 이해하고 투표장에서 원하는 곳에 도장을 찍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수년간 길 위에서 외쳤지만 무관심으로 일관해 온 국회와 정부의 태도 변화를 더는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한국피플퍼스트 등 장애인단체들은 이번 대선을 50일 앞둔 지난 1월18일 정부를 상대로 발달장애인의 공직선거 접근권 보장을 위해 그림투표용지, 이해하기 쉬운 공보물 등의 편의를 제공하라는 차별 구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치러질 대통령 선거와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포함해 향후 각종 선거에서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정보를 제작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마련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선거공보, 선거공약서를 제공하기 위한 공직선거관리규칙 개정 등의 조치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 제공 △그림투표 용지 및 로고·사진 등이 포함된 안내판 투표소 내 비치 등에 나서라는 것이다.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지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장애인복지관에 설치된 사전투표소를 찾은 발달장애인들이 투표를 하는 모습. 이들은 "공직선거법 예외규정 등으로 장애인의 투표소 접근이 100% 어렵다"며 "장애인을 유령취급하지 말라는 취지로 분장을 하고 투표를 한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발달장애인의 참정권과 관련해 소송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피플퍼스트를 비롯한 장애인단체들은 10년 가까이 참정권을 보장할 조치를 요구하며 변화를 기다렸다. 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법 개정을 이유로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고 국회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발달장애인의 요구가 담긴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이번 국회에 발의됐지만 언제 통과될지 불확실하다.
발달장애인들은 국가는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후보자와 정당, 정책 공약 등 선거 관련 정보에 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동등한 수준으로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선거공보 등을 제작 또는 이에 상응하는 수단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편의 제공 의무 위반이고 발달장애인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고 강조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21조와 27조는 국가에 발달장애인에게 공직 선거 과정에서 정당 및 후보자에 관한 정보를 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동등한 정도의 수준으로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편의 제공 의무를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발달장애인법 3조는 법률적·사실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 및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자신의 견해와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고 제10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중요한 정책정보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해 배포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 자체에 관해서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다만 그림 투표용지는 선거 결과를 왜곡할 수 있다는 반론이 있다. 투표용지에 들어간 사진이 투표에 영향을 줘 '이미지 선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소송대리인인 법조공익모임 나우 이수연 변호사는 "미국은 인종이 투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림투표용지에 반대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는 것인지는 의문"이라며 "벽보와 공보, 현수막 등에는 이미 후보자의 사진이 게재되고 있는데 투표용지에만 후보자의 사진을 넣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법원이 발달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준다고 해도 참정권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적지 않다.
이 변호사는 "발달장애인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인 선거권을 누려야 하지만 너무 많은 장애물이 있다"며 "인력 지원이 필요한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적 지원인 보조 제공 등과 관련한 소송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단순히 법과 제도만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점에서 국민 인식 개선과 발달장애인 선거권 행사를 위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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