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용산' 구상이 난관에 봉착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안보 공백을 이유로 용산 이전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신구 권력 충돌로까지 비화됐다. 당초 윤 당선인은 광화문 정부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고 청와대는 국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광화문이 아닌 용산 국방부를 택하면서 국민 저항에도 부딪혔다. 무엇보다 결정 과정이 일방통행식 불통인 까닭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상징인 청와대에서 나와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취지도 무색해졌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정부 출범 초기 국민적 반대에 직면, 정권 내내 어려움을 줬던 ‘광우병 시위’의 악몽을 꺼내들었다. 이명박정부 초기 벌어졌던 광우병 시위가 정권 퇴진운동으로 이어졌던 공포를 상기시키는 방식이다. 민주당 공세를 사실을 왜곡한 선전선동으로 규정, 보수 결집을 유도하겠다는 의도다.
광우병 시위는 2007년 한미 FTA를 통해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사람이 광우병에 감염될 위험이 있다고 보도된 뒤인 2008년 5월 본격화됐다. 5월2일 처음 시작된 집회가 이후 2개월간 연일 촛불시위가 열렸고, 7월 이후에는 주말 집회로 바뀌었다. 집회가 계속되면서 광우병은 물론 4대강사업 중단, 공기업 민영화 반대 등 정권 퇴진운동으로 확대됐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22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못된 심보가 아니고서야 무슨 염치와 권한으로 임기를 마무리하는 정권이 새정부 발목을 잡겠다는 것인가”라며 “오죽하면 제2의 광우병 선동이 아니냐는 비난까지 나오게 된 실정”이라고 날을 세웠다. 성일종 의원도 “광우병 괴담으로 재미를 봤던 옛날의 추억으로 떠올리며 대선 불복하겠다는 고상한 표현”이라고 비난에 가세했다. 인수위원회에서 청와대 이전 TF팀장을 맡아 용산 이전을 주도한 윤한홍 의원은 전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 “500억도 안 되는 이전 사업을 1조가 든다고 하는데 광우병 생각이 나기도 한다”며 민주당이 주장한 이전 비용을 괴담으로 폄하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민의힘이 광우병 사태를 재언급하며 반전에 나섰지만 국민의 반대 여론도 확인되면서 숙제만 쌓이게 됐다. 이날 발표된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 정기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대해 국민 58.1%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 의견은 33.1%에 그쳤다. 당장 설훈 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회 국방위에서 해당 조사결과를 제시하며 "(국민의) 58%가 반대하고 있다”며 “참 쓸데 없는 논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이 아닌가”라고 국민의힘을 몰아세웠다.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동해·울진 산불피해 등에 쓰여야 할 예비비를 청와대 이전 비용에 쓰겠다는 발상 자체가 반민생적”이라며 “예비비 집행을 위해서는 국무회의에서 의결해야 하는데 인수위는 국무회의 의결을 정부에 강제할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으로서는 보수진영 내 비판까지 더해지면서 골치를 썩여야 했다. 대표적인 보수 논객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지난 20일 “청와대에 무슨 죄가 있냐. 자리는 최고 아니냐"며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를 장소에 뒤집어씌우는 것은 미신”이라고 항간의 풍수에 근거한 용산 이전설을 부각시켰다. 홍준표 의원도 “건물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고 비판 대열에 가담했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인수위에서 권한상으로 하기 어려운 집무실 이전을 추진하려다 보니, 진보층뿐만 아니라 보수층의 반대를 산 것”이라며 “국민의힘에서는 정권 초기부터 발목이 잡혀 정권 퇴진 운동으로까지 이어진 이명박정부 시절의 악몽을 떠올리며 ‘보수 결집’을 시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인수위 간사단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