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신년 특별사면 후 입원치료를 받아온 박근혜 전 대통령이 24일 퇴원했다. 대구 시민들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박 전 대통령을 맞이했다. 동시에 정치권은 그의 입에 주목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의 구원 관련 언급이 있을까 인수위도 예의주시했다. 자칫 원망 섞인 발언이라도 나올 경우 보수층의 요동도 우려해야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정치 현안과 관련해 침묵을 지켰다. 윤 당선인에 대한 당선 축하 인사도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은 24일 오전 8시30분경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퇴원했다. 박 전 대통령은 퇴원 직후 소감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국민 여러분께 5년 만에 인사를 드린다”며 “많이 염려를 해주셔서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고 했다. 그는 의료진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3월31일 국정농단 사건 등으로 구속됐다. 국회 탄핵과 헌법재판소 판결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수감 이후 몇 차례의 치료와 입원 등을 위해 외부로 나간 적은 있으나 국민 앞에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박 전 대통령 퇴원을 환영하기 위해 친박계도 대거 출동했다. 김기춘·허태열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재원 전 정무수석, 이정현 전 홍보수석, 민경욱 전 대변인, 황교안 전 총리,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 장관, 유기준 전 해양수산부 장관, 윤상직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 유병세 전 외교부 장관, 함진규 전 새누리당 의원 등이 그를 맞았다.
박 전 대통령은 퇴원 직후 서울시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들러 부모 묘소를 약 5분간 참배한 뒤 대구시 달성구에 마련된 사저로 향했다. 대구에서 태어난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한나라당에 입당해, 다음해인 1998년부터 대구 달성군에서 내리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때문에 박 전 대통령에게 대구 달성은 정치적 고향과도 같다. 박 전 대통령은 사저 앞에 몰린 지지자들과 시민들에게 “힘들 때마다 저의 정치적 고향이자 마음의 고향인 달성으로 돌아갈 날을 생각하며 견뎌냈다”고 애틋함을 드러냈다. 발언의 절반 이상을 대구에 대한 애정으로 채웠지만 자신이 몸 담았던 정당과 윤 당선인에 대해서는 침묵을 유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4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마련된 사저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난감해진 쪽은 윤 당선인이다. 박 전 대통령이 윤 당선인에게 당선 축하 인사조차 건네지 않으면서 배경을 놓고 갖가지 해석이 나왔다. 두 사람은 구원으로 얽혀있다. 윤 당선인은 지난 2016년 박영수 특별검사의 수사팀장으로 발탁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앞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박근혜정부에 대항하다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그의 활약으로 박 전 대통령은 구속됐고, 이후 적폐청산의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에까지 올랐다. 파격적 인사였다. 지난 2019년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당시에는 박 전 대통령이 허리 통증 악화 등으로 형집행정지를 신청했으나 기각하면서 친박계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대선 경선 과정에서는 홍준표 의원이 이를 두고 "보수 궤멸"의 책임을 묻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그때라도 형집행을 멈췄다면 건강이 이토록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강한 불만도 나왔다. 대표적 친박 인사인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 과정에서 윤 당선인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이변을 낳았다. 20대 대선에서 대구는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21.6%의 지지를 보냈다. 정권심판론 속에서도 이 후보에게 20% 넘는 이례적 지지를 보낸 것은 경북 안동 출신인 이 후보에 대한 지역연고 표심보다, 윤 당선인에 대한 원망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 때문이었다는 게 지역 정가의 분석이다.
윤 당선인에 대한 원망의 분위기는 이날에도 이어졌다. 사저 앞으로 몰려든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윤석열 범죄자”, “윤석열을 탄핵시키자” 등과 같은 발언을 하며 강한 적의를 드러냈다. 한 여성은 박 전 대통령이 발언하는 내내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통곡하며 “이제 편히 쉬시라”는 말을 반복하기도 했다.
윤 당선인으로서도 다급해졌다. 윤 당선인은 이날 서울 통의동 인수위 앞에 마련된 천막 기자실을 찾아 "박 전 대통령의 건강이 회복돼 사저로 가시게 돼 다행”이라며 “저도 다음주부터 지방을 가볼까 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퇴원하셨다고 하니 한 번 찾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박 전 대통령을 5월10일 대통령 취임식에 "당연히 초청할 것"이라고 했다. 대구 시민들은 박 전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화해’를 바라는 분위기다. 50대 이모씨(여성)는 “윤 당선인도 옛날에는 검사의 일을 했을 뿐 아니냐”며 “과거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이 대인배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냐”고 기대감을 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 들어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구 달성=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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