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한님 기자] 김오수 검찰총장과 전국 지검장들이 자신들의 자리까지 걸고 '검수완박' 저지에 나섰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민주당 의원총회(의총)에서 검수완박 입법을 강행하면 검찰 존재 의의가 사라진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현장 불편함이 산적한 상황에서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 강조했다.
다만, 이날 논의될 예정이었던 검찰 수사의 공정성·중립성 확보 방안은 검수완박 입법 저지 후로 미뤄졌다. 수사권이 없어지면 자신들이 그 공정성과 독립성을 논의할 의미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전국 지검장들은 국회 '형사사법제도개선특위(가칭)' 구성을 제안하며, 관련 논의를 진행하자고 요청했다.
"수사권 조정 후유증 커…폐지는 안 될 말"
김오수 검찰총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지검장 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뉴시스)
전국 지검장들은 1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15층 대회의실에서 김오수 검찰총장 주재로 열린 전국 지검장 회의를 마치고 "검찰의 수사 기능을 전면 폐지하게 되면 사건관계인의 진술을 직접 청취할 수 없는 등 사법정의와 인권보장을 책무로 하는 검찰의 존재 의의가 사라지게 된다"며 검찰 수사권 폐지 법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예세민 대검 기조부장은 "검찰총장이 국회를 찾아갈 가능성도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는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해 김오수 검찰총장과 박성진 대검 차장, 예세민 대검 기조부장이 참석했다. 오전 10시에 시작해 6시간을 넘기며 장시간 진행됐다.
회의에서 전국 지검장들은 지난해 검찰 수사권이 줄며 발생한 현장 폐해를 설명하고, 검찰 수사권 폐지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지난 2021년 초 도입된 검경 수사권 조정을 일 년여 운용하면서 일선 검사들이 많은 문제점을 발굴했다는 것이다.
회의 직후 브리핑에 나선 김후곤 대구지검장은 "수사권 조정 이후 무고 인지(검찰이 범죄의 무고 여부를 판단하는 것)가 71% 급감했고, 수사 지연이 심각해졌다"며 "수사권 조정 후 한 번 지금쯤 평가하고 잘못된 것은 개선하는 시점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김 지검장은 "대한변협(대한변호사협회)에서 설문조사를 했더니 변호사의 67%가 수사 지연 문제를 제기했다"고 덧붙였다.
검찰 간부들은 직을 내놓으면서까지 검수완박을 저지하겠다는 뜻을 굳혔다. 회의에 앞서 김오수 검찰총장이" 만약 검찰 수사기능이 폐지된다면 검찰총장인 저로 서는 더이상 직무를 수행할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총장직까지 걸었다. 회의에 참석한 지검장들도 "직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공통된 입장이었다고 김 지검장은 전했다.
지검장들, 국회 특위 구성 후 논의 제안
김후곤 대구지검장(왼쪽)과 예세민 대검 기조부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전국 지검장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배한님 기자)
그러나 중요 의제로 예상됐던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의 실효적 확보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국 지검장들이 검찰 수사권이 폐지되는 일을 막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대구지검장은 "이 법안은 검찰 수사권을 폐지한다는 내용"이라며 "수사권이 없는데 수사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논할 것이냐, 지금은 그 단계가 아니다는 것이 검사장들의 주된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들을 설득할 (개선 방안이) 차차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라며 "일선에 돌아가서 국민들께 소상히 설명드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준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이 공정·중립성 다 갖췄다고는 생각 안 해"
그는 또 "(현재 검찰이)공정성과 중립성을 다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문제든지 저희가 안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며 "지금은 그 문제를 갖고 이 제도(검찰 수사권 폐지)를 추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타이밍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검장들은 수사권 폐지를 대신할 검찰 개혁 방안을 논의할 국회 '형사사법제도개선특위(가칭)' 구성을 제안했다. 검찰의 수사 기능뿐만 아니라 형사사법제도를 둘러싼 제반 쟁점에 대해 각계 전문가들과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를 거치자는 것이다. 특위에서 국민 의견을 수렴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김 지검장은 "형사사법제도의 여러 축을 담당하는 법원, 변호사, 기타 시민사회 단체 등 모든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검찰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것이라면 물러서야 한다"며 "민의에 대표자인 국회는 그 의견을 취합해서 국민께 도움이 되는 법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겠다 제안을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수십년간 검찰 개혁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이제 와서 검찰 개혁에 대한 절차적 논의를 진행해야 하느냐는 지적에 김 지검장은 "이 제도가 형사사법 절차에 어떤 문제가 생겨서, 어떤 사고가 발생해서 추진해야 한다, 이렇게 시작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지 않느냐"며 "이 제도 추진이 너무 성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성급한 법안 추진은 국민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공통 인식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사진=연합뉴스)
검찰이 '검수완박'에 대해 전면적인 반대 입장을 내놓은 것은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로 관련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다. 지난 8일 민주당 출신인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로 사·보임하면서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위한 사전작업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 것이다. 국회 상임위원에서 법안에 대한 이견이 있을 경우 안건조정위원회를 꾸려 법안을 심사하는데, 양 의원이 법사위로 보임하면서 민주당이 안건조정위 구성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게 됐다.
검찰 내부에서는 연쇄적으로 반발이 터져나왔다. 지난 8일 대검찰청과 전국 고검장들이 검찰 수사권 폐지 법안에 공식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9일에는 법무부 검찰국, 10일에는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11일 오전에는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들까지 연이어 뜻을 함께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 및 평검사들과 사무국장, 과장, 사무관 등 일반직 사무관들까지 검찰 수사기능 전면 폐지 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입장 행렬에 동참했다.
배한님 기자 b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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