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병원에서 환자의 진료상황이 다른 환자들에게 노출되는 진료환경은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이 나왔다.
인권위는 21일 A씨가 모 대학병원 원장을 상대로 낸 진정 사건에서 이같이 결정하고, 해당 병원에는 산부인과 시설구조 및 진료 절차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0월13일 A씨는 해당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 외래 진료를 받았다. 이날 병원은 여성 환자 3명을 1미터 간격으로 앉게 해 순서대로 진료했고, 이에 A씨의 병명과 치료 방법은 다른 환자에게 노출됐다.
탈의실도 문제였다. 다른 환자가 내진실 진료대에서 내진을 받는 동안 A씨는 내진실과 커튼으로 분리된 탈의실을 안내받았다. A씨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에 들어가니 내진 중인 환자의 소지품이 그대로 있었고 다른 환자의 내진 과정을 그대로 듣게 됐다. A씨는 “내가 내진 받는 동안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 명백해 불안이 가중됐다”며 “이러한 방식으로 해당 병원이 환자들을 진료하는 것은 환자들에게 수치심을 주고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병원은 A씨의 병명과 검사 결과 등에 대한 개인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노출됐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전국 각 지역 병원에서 해당 병원으로 진료를 의뢰하는 부인암 환자가 많고 암의 특성상 치료를 지체할 수 없어 환자 수 제한을 철저히 시행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A씨의 진료가 이루어진 당일 진료환자가 총 172명으로 진료실 밖 대기 공간이 부족했고 이 때문에 진료실 내 2~3명의 환자 또는 보호자가 있었던 상황이라는 것이다.
탈의실과 관련해서 병원은 “많은 환자로 인해 외래 진료실 수가 부족해 탈의실을 별도로 마련하기 어려워 불가피하게 내진실 내 커튼으로 공간을 분리했다”며 “속옷 탈의가 불가피한 산부인과 특성상 타 진료에 비해 진료까지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를 줄이고자 전 환자가 내진하는 동안 탈의하도록 요청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병원은 “향후 진료실 내 1인 진료를 실시하여 환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탈의 및 개인물품 보관을 위한 대책을 세우는 등 대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인권위는 병원 고의가 아니더라도 많은 환자 수와 촉박한 진료 시간 등으로 인해 진료 과정에서 의료법 제19조가 보호하는 환자의 내밀한 정보를 타인에게 알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A씨 등 환자들이 심리적 동요와 수치심을 경험했을 것이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며 “A씨가 내진을 받는 동안 다른 환자가 탈의를 위해 내진실을 출입하게 한 것도 A씨에게 수치심과 모욕감을 줄 수 있는 행위”라고 했다. 아울러 해당 병원이 현행 의료법 제19조의 ‘정보누설금지’ 조항을 위반해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한 일반적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병원에서 환자의 진료상황이 다른 환자들에게 노출되는 진료환경은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이 21일 나왔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 없음.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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