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롯데그룹 경영비리 사건을 수사한 현직 검찰 간부가 대형 경제비리 사건에 대한 수사검사와 기소검사를 분리하도록 정한 '검수완박' 수정안에 대해 "대국민 사기극"이라면서 "대형 경제사건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정면 반박했다.
인천지검 조재빈 1차장 검사는 28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수사에 참여하지 않았던 검사들이 수사기록과 증거를 검토하고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도록 정한 법안 수정안은 대형 경제 사건의 수사현실을 전혀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조 차장은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장 검사 시절 2016년 6월부터 넉달 동안 롯데그룹 경영비리 사건을 수사했다. 고 신격호 당시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그가 법정에 세운 사람만 24명이었다.
사진/뉴스토마토
조 차장은 "당시 수백명의 수사관을 동원해 수회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압수물만으로 서울중앙지검 지하1층 창고가 가득 찼다. 디지털 증거는 3.2테라바이트로 기소시까지 다 보기에 벅찰 정도로, 수사기록은 수백권이었다"면서 "수사에 참여한 검사들이 공소장을 작성하는 데에만 1주일이 넘게 걸린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이어 "수사에 참여하지 않았던 검사들이 수사기록과 증거를 검토하고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아마도 10여명의 검사들이 참여해 수사기관과 동일한 4개월간 집중적으로 검토해야 공소장 작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당시)고 신격호 회장은 이미 고령이었고 신동빈 회장은 영장이 기각돼 불구속 상태였기에 망정이지 구속기간 20일 동안 수사검사가 아닌 검사들이 대거 투입돼 공소장을 작성한다고 해도 20일 동안 작성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수사검사와 기소검사를 따로 둘 경우 구속기간 내 공소장 작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속됐던 피의자들도 석방해 몇달동안 기소여부 결정과 공소장을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 조 차장의 지적이다.
수사-기소 분리론 출발 국가인 영국 상황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그는 "영국 경찰이 수사와 기소를 독점한 폐해가 심각해지자 국민들이 1986년 왕립기소청(CPS)을 신설한 것이 수사-기소 분리론"이라며 "영국이 왕립기소청을 신설하면서 동시에 경제·부패·뇌물범죄 등에 대한 국가 대응력 강화를 위해 검사가 수사와 기소를 함께 할 수 있는 중대비리수사청(SFO)를 설치했다는 것을 (수사-기소 분리)논의에서 절대로 빠뜨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국에서조차 중대범죄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오히려 수사와 기소를 통합한 중대비리수사청까지 만들어 대륙법계 검찰 모델을 따라가는 형국"이라면서 "수사를 직접 하거나 수사를 지휘해 온 검사가 소추를 담당하는 것이 대륙법계 검찰의 모델"이라고 했다.
조 차장은 이와 함께 "우리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수사한 검사에게 소추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우리 헌법은 소추권자인 검사에게만 강제수사 권한을 부여하고 있고, 이는 4·19혁명 이후 경찰에는 강제수사권한을 부여할 수 없다는 국민의 결단"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수사를 진행한 검사에게 소추를 할 수 없도록 법률에 규정하는 것은 우리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면서 "장기적으로 사법경찰관만 수사를 하고 검사는 기소만 하도록 하려는 시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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