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재훈 기자]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윤석열 정부 임기 동안 총 1000조원이 넘는 '통큰 투자'를 결정했다. 올해 국가 예산 607조원의 1.5배가 넘는 액수다.
무엇보다 각 기업들이 4~5년이라는 대통령의 임기와 맞물려 막대한 자금 집행 전략 꺼낸 것은 처음이다.
특히 이들 대기업들은 과거와 달리 국내에 집중 투자해 대규모 고용을 창출하고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중국 보다 미국', '민간 주도 성장' 등으로 대표되는 윤석열 정부 정책의 방향에 적극 발을 맞췄다는 분석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올해 본예산 607조7000억원의 1.5배를 넘는 수준이다.
서울 삼성 서초사옥 모습. (사진=연합뉴스)
'뒤질세라'...앞다퉈 투자발표한 대기업들
먼저 삼성은 지난 24일 '역동적 혁신성장을 위한 삼성의 미래 준비'란 발표를 통해 향후 5년간 45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보름만의 일이다.
해당 자금은 향후 5년간 반도체·바이오·신성장 IT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투입되며 450조원 가운데 80%인 360조원은 '국내 투자'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4년간 국내에 63조원을 투자키로 했다. 현대자동차·기아·현대모비스 등 3사를 주축으로 전동화·친환경, 신기술·신사업, 기존 사업 경쟁력 강화 등에 나설 방침이다.
SK그룹은 반도체(Chip), 배터리(Battery), 바이오(Bio) 등 이른바 'BBC'로 압축되는 핵심 사업 강화를 위해 2026년까지 247조원을 투자한다. 247조원 중 179조원이 국내에 투자될 예정이다. SK그룹의 국내 투자 금액은 투자를 발표한 주요 대기업 중 가장 많다.
한화그룹은 2026년까지 향후 5년간 미래 산업 분야인 에너지, 탄소중립, 방산·우주항공 등에 총 37조6000억원을 투자한다. 이 중 20조원은 국내에 투자할 계획이다. 국내 투자금은 에너지, 탄소중립, 방산·우주항공 등의 3개 사업 분야에 집중된다.
LG그룹도 향후 5년간 국내에만 106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에 나선다. 총 투자액 가운데 43조원은 배터리 및 배터리 소재, 차세대 디스플레이, AI 등 미래성장 분야에 투입한다.
포스코그룹은 2026년까지 국내 33조원을 포함해 글로벌 시장에 53조원을 투자한다. 친환경 생산체제 전환을 위한 전기로 신설 및 친환경 설비 도입, 전기차 모터용 철강제품 기술력 강화 등에 약 20조원, '친환경미래소재' 사업 분야에 약 5조3000억, 에너지·건축·인프라·식량 사업 등 '친환경인프라' 분야에도 5조원 가량이 각각 투입된다.
롯데그룹 역시 5년간 총 37조원을 투자한다. 바이오 의약품 CDMO 사업 진출을 준비 중인 롯데는 해외 공장 인수에 이어 1조원 규모의 국내 공장 신설을 추진한다. 롯데케미칼은 5년간 수소 사업과 전지소재 사업에 1조6000억원 이상을 투자한다. 7조8000억원을 투자해 설비 투자와 생산 증설에도 나선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향후 5년간 총 21조원을 투자한다. 스마트 조선소 구축과 건설 분야 자동화·스마트 건설기계 인프라 구축·스마트 에너지사업 투자 등에 12조원, 친환경 R&D 분야에 총 7조원 등이다.
두산그룹은 소형 모듈 원자로(SMR), 가스터빈, 수소 연료전지 등 차세대 에너지 사업에 향후 5년 간 5조원을 투입하고 원전을 비롯한 국내 에너지 산업 생태계 활성화에 나선다. 두산은 특히 반도체, 배터리와 함께 한미 경제안보동맹의 한 축으로 부상한 SMR 개발에 힘을 기울일 예정이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대기업들이 1000조가 넘는 투자를 발표했는데 이는 지난 5년간 투자 심리에 위축돼있었던 기업들의 모습과는 상이한 모습"이라며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우리 경제의 긍정적인 시그널로 보고 기업들의 좋은 성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선순환의 첫 단계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투자는 윤석열 정부의 '민간 주도 성장' 기조와 '일맥상통'한다.
윤석열 정부는 충북 오송에 위치한 오창의 바이오기술(BT)을 시작으로 대덕의 정보통신기술(IT), 나노기술(NT), 에너지기술(ET), 익산의 식품기술(FT)에 이르기까지 중원 신산업벨트를 조성하고 최첨단 클러스터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또 기업 활동을 방해하는 규제 약 80여개를 폐지할 것이라는 것도 대표적인 '친기업' 공약으로 꼽힌다.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에 게양된 LG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미-중 갈등 등으로 대기업들의 투자 전략이 변화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지난 23일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 경제협력체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공식 출범과 동시에 가입국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 정부는 IPEF 출범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보다 미국'에 쏠린 새 정부 외교 정책이 기업들의 투자 발길을 불확실성이 증폭된 중국이 아닌 국내로 돌리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민간 주도 경제의 핵심은 기업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대규모 투자가 잇따라 발표되는 것은 정부 기조에 기업들이 화답하고 있는 것"이라며 "미국과의 '포괄적 전략동맹'에 대한 기대도 이번 투자에 일부 반영된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투자가 증가한 이유는 최근 중국에서 정치적 위험이 정치적 위험이 커지다 보니 중국을 기피하고 차라리 한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만큼 국내 기업 환경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동시다발' 발표, 5년 임기내 투자 완료 '이례적'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앞다퉈 동시다발적으로 이같은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다. 약 18년 전 노무현 정부 시기 2004년 삼성, LG, SK, 현대차그룹의 투자 발표가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있다. 이들 기업은 당시 각각 70조원, 57조원, 20조원, 6조5000억원 상당의 투자를 발표한 바 있다. 다만 투자 기간이 3년~10년으로 각각 달랐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삼성 27조원, 현대차 11조원, LG 11조2000억원, SK 8조원, 포스코 6조9000억원, 한화그룹 2조원 투자를 발표했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규모 반도체 라인 투자를 결정 지은 바 있으며 문재인 정권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투자는 미국 투자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은 2021년 총 40조원에 육박하는 투자를 발표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그간 발표해왔던 것을 보면 각 기업의 상황마다 투자 기간과 투자 액수가 상이했다"며 "4~5년을 명시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사불란하게 투자가 발표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업체별로 다르지만 과거에 발표된 투자금과 집행중인 투자인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발표된 투자금이 겹친 경우가 있을 것"이라며 "발표한 투자금이 전부 집행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국내 기업들이 경제 살리기에 힘을 쏟고 있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라고 말했다.
조재훈 기자 cjh125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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