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가 차원의 정책이 시행 중인 가운데 산업계는 일부 규제 완화와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국내 제조기업 10곳 중 9곳은 탄소중립 추진 과정에서 규제로 애로사항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대한상공회의소는 환경부와 공동으로 이날 서울 대한상의 회관에서 '기업환경정책협의회'를 개최했다. 기업환경정책협의회는 정부와 기업이 함께 환경 정책 방향과 업계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며, 지난 1998년 이후 매년 열리고 있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인사말에서 "많은 기업이 탄소중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응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아직도 규제가 많다"며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탄소중립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중심의 적극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제철 환경부 차관은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의 흐름이 사회·경제적인 대변혁을 만드는 중이고, 금융과 기업 또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며 "순환 경제 등 새로운 시장 창출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등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대기배출허용총량 추가 할당 필요"…법안 발의
이날 회의에서는 기업들이 환경 정책과 관련해 건의했고, 환경부는 일부 건의에 대해 수용 의사를 밝혔다.
제조업체 A사는 "공장 신증설 시 대기배출허용총량이 필요한데, 대기관리권역법상 지역 대기배출허용총량이 부족하면 추가 할당을 받을 수 없어 신증설이 불가능하다"며 "총량을 추가로 할당받을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건의했다.
이에 환경부는 "지난해부터 추가 할당, 차입, 상쇄 등 유연성 제도의 도입을 검토했고,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태"라며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변했다.
마티아스 코먼 OECD 사무총장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 정책 세미나'에서 영상으로 기조강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유업체 B사는 "폐가스 소각시설인 플레어스택이 정전, 화재, 설비 고장 등 긴급사항 발생으로 가동되지 못할 경우 배출 기준을 정상적으로 준수하기 어려우므로 행정 처분에서 제외될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플레어스택은 정유·석유화학 공정 등에서 발생하는 가연성 폐가스를 안전하게 연소시켜 대기 중으로 배출하는 시설이다.
환경부는 "해당 사업장이 유역·지방환경청에 개선계획서를 제출하면 행정 처분이 제외될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대답했다.
이후 토의 시간에는 △동일 기업의 인접 권역 소재 사업장 간 대기배출허용총량 거래 허용 △배출권거래제 산정·감축 의무 대상에서 간접 배출 제외 △온라인 배송 포장재 감축을 위한 인센티브 방안 마련 △환경오염시설법과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 지침 간 대기오염물질 자가측정 주기 일원화 등의 업계 건의가 있었고, 이에 대해 환경부에서 추가로 검토하기로 했다.
제조기업 65% "규제 때문에 시설 투자 차질 겪어"
대한상의가 이달 2일부터 13일까지 국내 제조기업 302개사를 대상으로 '산업계 탄소중립 관련 규제 실태와 개선 과제'를 조사한 결과 기업 92.6%가 탄소중립 기업 활동 추진 과정에서 규제 애로가 '있었다'고 응답했다. '없었다'는 응답은 7.4%에 불과했다.
이들 기업 중 65.9%는 규제 때문에 '시설 투자에 차질'을 겪었다고 답했고, '온실가스 감축 계획 보류'(18.7%), '신사업 차질'(8.5%), 'R&D 지연'(6.9%) 등의 애로를 겪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탄소중립 이행의 규제 애로 실태. (자료=대한상공회의소)
애로사항의 유형으로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행정 절차'(51.9%)가 가장 많았고, '법·제도 미비'(20.6%), '온실가스 감축 불인정'(12.5%), '해외 기준보다 엄격'(8.7%), '신사업 제한하는 포지티브식 규제'(6.3%) 순으로 조사됐다.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기업 활동으로는 '전력 사용 저감'(55.5%)이 가장 많았다. 이어 '연료·원료 전환'(19.5%), '재생에너지 사용'(10.2%), '온실가스 저감 설비 구축 등 공정 전환'(8.2%), '신사업 추진'(4.7%), '혁신 기술 개발'(1.9%) 등으로 응답했다.
기업들은 탄소중립을 위해 개선이 필요한 제도와 규제로는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42.1%)를 가장 많이 꼽았다. 그다음으로 '대기 총량 규제'(24.7%), '시설 인허가 규제'(19.2%), '재활용 규제'(14%) 등의 순이었다.
특히 배출권거래제에 대해 많은 기업이 다양한 온실가스 감축 활동에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상쇄배출권' 활용 한도를 확대하고, 해외온실가스배출권의 국내 전환 절차를 간소화해 줄 것을 강조했다. 상쇄배출권은 배출권거래제 대상 기업이 사업장 외부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면 이에 대한 실적을 인증받아 배출권으로 전환하는 제도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국내 상당수 기업이 탄소중립을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삼아 도전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새 정부가 과감하게 규제를 개선하고, 제도적 기반을 조속히 마련해 우리 기업이 마음껏 탄소중립 투자를 하고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탄소중립기본법 7조 1항, 8조 1항과 2항을 보면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해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고, 특히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만큼 감축하는 중장기 목표에 따라 산업, 건물, 수송, 발전, 폐기물 등 부문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50 탄소중립 비전'을 법제화한 14번째 국가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