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세대에서 그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다. 이젠 ‘부캐(릭터)’라 부르면 될 듯하다. 유행처럼 번지는 ‘부캐’의 전성시대 속에 이 사람은 ‘본캐(캐릭터)’와 ‘부캐’ 사이를 너무도 유려하게 넘나드는 스킬을 보유한 몇 안 되는 실력자다. 그걸 대중이 특별히 느끼지 못하니 사실 더 놀라울 따름이다. ‘본캐’로서도 이미 정점을 찍었고, 정점에서 국내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영향력을 발휘 중이다. 그런데 그런 파워가 ‘부캐’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이 정도면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속 돌연변이 히어로 캐릭터에 가깝다 해야 할 듯하다. ‘본캐’ 가수일 때는 아이유로 불리고, ‘부캐’ 배우일 땐 이지은으로 불리는 그 사람. ‘부캐’의 이지은을 보고 세계 최고 스크린 거장 중 한 명인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직접 러브콜을 보냈을 정도로 그의 매력은 설명 불가능하다. 그리고 고레에다 감독이 그의 ‘부캐’에 빠진 뒤 ‘본캐’의 노래까지 섭렵하며 ‘아이유’ 혹은 ‘이지은’ 앓이를 했단 사실은 온전히 공개된 팩트다.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브로커’를 본 현지 심사위원들도 이지은 연기에 극찬을 쏟아냈다고 하니 더 이상 설명은 무의미할 뿐이다. ‘브로커’의 이지은이 가수 아이유란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을 정도란 것만 우린 여전히 알고 있을 뿐이다.
배우 이지은. 사진=EDAM엔터테인먼트
칸 국제영화제, 배우를 ‘업’으로 삼고 사는 이들에게도 그 자리는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자리다. 연기를 병행 중이지만 명확하게 ‘배우’란 타이틀을 가져가기엔 분명 부족함이 있다. 그런 그가 첫 번째 스크린 데뷔작으로 이 자리를 경험하게 됐다. 단순한 행운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행운이었다. 우선 그 자리에 섰던 기분은 여전히 온 몸에 오롯이 남아 있단다.
“칸에 갔던 건 제겐 정말 말도 안 되는 행운이었죠. 지금 생각해도 죽기 전에 다시 기회가 올까 싶어요. 그곳에서도 송강호 선배님은 정말 즐기시는 게 너무 눈에 보여서 부러웠죠. 동원 선배님도 굉장히 기분이 좋으셨던 게 보였어요. 그리고 주영 언니랑은 칸에서 정말 많이 친해졌어요. 마지막 날 방 같이 썼는데 솔직한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서로 ‘우리 여기 온 거 너무 신기하지 않아’라며 웃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배우 이지은. 사진=EDAM엔터테인먼트
이미 고레에다 감독이 공식적으로 언급했으니 유명해졌지만 그의 출연작인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이번 ‘브로커’ 출연까지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됐다. 벌써 꽤 오래 전 드라마가 됐지만 여전히 국내에선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다. 그 드라마를 통해 자신이 평소에도 좋아하던 일본의 거장 감독님에게 연락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며 웃는다.
“첫 미팅에서 ‘나의 아저씨’ 얘기를 하시는 데 신기했죠. 사실은 그 드라마 끝난 직후 우연히 식당에서 감독님 뵌 적이 있었어요. (이)선균 선배랑 다른 감독님이랑 있는데 감독님이 다른 자리에서 간장 게장을 드시고 계시더라고요(웃음). 멀찍이서 인사 한 번 드렸죠. 그리고 1년 도 안돼서 ‘브로커’ 대본을 받았어요. 사람 인연이 진짜 신기한 거 같아요.”
배우 이지은. 사진=EDAM엔터테인먼트
아이유, 즉 배우 이지은은 국내에서 연기 잘하는 가수 출신 배우로 여러 연출자들이 상당히 선호하는 연기자다. 그런 그의 매력은 고레에다 감독 역시 사로 잡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지은 본인이 ‘브로커’ 속 ‘소영’이란 인물을 잡아내는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우선 ‘소영’은 어린 나이이면서 아이를 출산한 엄마다. 그리고 자신이 낳은 아이를 팔아야 하는 사람들과 동행하면서 미묘한 모성을 드러내야 한다. 상상만으로 이 배역을 만들어 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소영’에게 주어진 설정도 너무 많았고 접근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까다로운 인물이었어요. 대본에 정말 많은 부분이 담겨 있었지만 그 너머에 있는 지점은 집요할 정도로 감독님을 괴롭히며 여쭤봤어요. 감독님이 요구한 ‘소영’의 포인트 중 하나가 ‘고단함’이었어요. 영화 초반 등장 장면에선 실제로 살도 좀 많이 빠져 있었는데 감독님이 좋다고 하셨어요. 그런 고단함 속에 소영이 아들 우성에게 느끼는 모성이 드러나진 않지만 분명 진하게 담기길 원하셨던 것 같아요. 엄마로서 아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그게 드러나지 않게 한단 연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배우 이지은. 사진=EDAM엔터테인먼트
‘브로커’를 보면 관객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여러 명장면이 언급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강동원과 함께 작은 공간에 들어가 대사를 주고 받는 대관람차 장면이다. 영화에선 굉장히 따뜻하게 그리고 감성을 끌어 올리는 장면으로 표현이 됐지만 실제 촬영에선 굉장히 긴장감 넘치게 진행됐다며 웃는다. 기본적으로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NG없이 찍어냈어야 했다고,
“그 장면이 진짜 긴장을 많이 한 장면이에요. 기회가 딱 한 번 밖에 없는 촬영이었어요. 촬영이 제 방향에서 한 번 찍고 선배 방향에서 한 번 찍고. 그럼 끝이에요. 딱 일몰 시간에 맞춰서 찍는데 그렇게 찍고 나면 촬영이 불가능해져요. 만역 실패하면 그 많은 스태프가 다음 날 다시 준비를 해야 하잖아요. 그 좁은 공간 속에 저, 동원 선배님, 아기 그리고 촬영 감독님만 타고 찍었어요. 정말 ‘실수하면 안된다’라고 읊조리며 찍은 장면이에요(웃음)”
배우 이지은. 사진=EDAM엔터테인먼트
또 하나의 명 장면은 아마도 ‘태어나줘서 고마워’란 극중 대사일 것이다. 듣는 이에겐 그리고 말하는 이에게도 치유의 순간이 될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싶었다. 이 장면이 온라인에서도 관람객들의 여러 리뷰를 통해 언급됐다. 그 대사가 이지은의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 ‘눈물을 흘렸다’는 평도 너무 많았다. 당사자인 이지은의 생각은 이랬다.
“저는 운이 좋게 직업 때문에 사랑을 많은 받아왔어요. 그래서 생일 때마다 듣는 말이에요. 서른이 되면서부터 개인적으로 작고 소소한 행복이 꽤 많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이 영화를 찍은 것은 20대 때였지만 영화관에서 봤을 때 좀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전 스스로에게도 ‘태어나서 고마워’라는 말을 종종 하긴 해요. 최근 생일을 맞은 엄마에게도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했고. 제 기분은 그래요.”
배우 이지은. 사진=EDAM엔터테인먼트
이지은은 개인적으로 고레에다 감독의 마니아라고 전했다. 그의 전작 대부분을 감상했단다. 고레에다 감독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통해 줄곧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해왔다.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도 있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들도 있다. 그의 작품 속 가족들은 대부분 그렇게 이어진 가족들이다. ‘브로커’에서도 그랬다. 이지은이 생각하는 가족은 어떤 개념으로 다가올까 싶었다.
“감독님 작품 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왜, 당신이 내 아빠야?’란 대사가 나와요. 그 질문에 ’그냥’이라고 말해요. 가족? 피가 섞이고 유전자가 같아야 가족일까. 그냥 정신적으로 유대가 깊고 연대하며 민 낯을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라면 가족이 아닐까 싶어요. 가족이 꼭 하나의 형태로만 있다고 생각 들진 않아요. ‘브로커’를 보시면 이런 가족도 있을 수 있겠다는 게 관객 분들에게 전달되면 좋을 것 같아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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